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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11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구 수산시장의 모습. 손님이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배우한 기자

“처음 노량진 수산시장이 생길 때 들어와서 소매자리 하나 마련해서 힘들게 장사 시작했어. 이곳은 내 청춘을 다 바쳐 장사하면서 우리 식구 먹여 살린 생명줄 같은 곳이야. 그런 곳을 강제로 철거하고 나가라고 하니까 서운한 거지.”

11일 서울 동작구 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만난 한 70대 상인의 목소리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수산시장이 만들어진 1971년부터 이 곳에서 장사를 했다는 그였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는 활력 넘치는 시장이 아니라 깨진 수조뿐이었다. 수조를 가득 메운 건 물고기가 아니라 담배꽁초를 비롯한 온갖 쓰레기였다.

2007년 수협은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해 2016년 신 시장을 개장했다. 그로부터 3년, 그리고 구 시장에 물과 전기 공급이 중단된 지 3개월이 지났다. 120여개 가게가 구 시장에 남았다지만, 이날 문을 열고 영업하는 가게는 40여 곳 정도 보였다. 문을 열어도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돈 모아 구한 발전기를 돌려 불을 켜고 이 불을 이웃한 몇몇 가게가 함께 쓰는 식이었다. 한데 모여 연탄불에 몸을 녹이던 40여명의 상인들은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11일 옛 노량진 수산시장 곳곳엔 물고기 대신 쓰레기만 가득한 수조가 놓여있다. 오세훈 기자

퇴락한 시골 장터처럼 고요한 풍경이지만 불과 3일 전만 해도 난리법석이었다. 수협이 구 시장에 자동차가 드나들 수 없도록 통행로를 막아버렸고, 결국 길을 뚫으려는 상인들과 한바탕 난투극이 벌어졌다. 그 다음부터 진입로를 지키기 위해 상인들은 순번을 정해 길을 지키기 시작했다. 기자가 다가가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혹시라도 또 싸움이 날까 경찰 10여명도 진입로 부근에 머무르고 있었다.

손님들은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 당황했다. 남편과 수산시장을 자주 찾았다는 김희수(65)씨는 “이 정도로 삭막하고 무서운 공간이 됐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라면서 “구 시장은 여전히 정이 느껴지는 공간인데 상인들이 이 추운 날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넘쳐나는 신 시장이라 해도 분위기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본 식당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구 시장(불법시장) 수산물 반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신 시장 상인들도 구 시장 상인들의 마음은 이해한다는 분위기였다. 구 시장에서 15년 장사하다 넘어 왔다는 한 상인은 “구 시장에 남아서 전통시장을 지키자고 하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라면서 “수협과 상인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불신이 너무 강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11일 옛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상인들이 연탄불 앞에 모여 손을 녹이고 있다. 오세훈 기자

불신은 깊다. 구 시장 상인들은 수협이 속였다고 생각한다. 20년간 냉동 수산물을 팔았다는 김수환(59)씨는 “약속과 다르게 신 시장을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서 밀폐된 대형마트 같은 곳으로 만들었다”며 “임대료가 비싸고 자리가 좁아서가 아니라 전통 수산시장다운 시장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게 신 시장의 문제”라고 말했다. 구 시장을 대변하는 노량진 수산시장 비상대책위원회 이일옥 위원장도 “수협은 우리 입장을 이해하기보다 무조건 신 시장으로 들어가라는 식으로 강요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협 측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수협 관계자는 “무조건 구 시장 존치만 주장하는 바람에 협의가 진전되질 않는다”며 “어쨌든 신 시장 이전은 합법적으로 진행된 절차인 만큼 구 시장 상인들의 행위는 불법점유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지난해 강제집행 과정을 방해했다며 수협이 신고한 구 시장쪽 관계자 8명이 동작경찰서에 출석, 업무 방해 등 혐의로 조사받았다. 구 시장 상인들은 구 시장 쪽만 경찰에 조사받는다며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항의집회를 열었다.

이 때문에 이제 대화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수협은 구 시장 상인과 대화했다지만 신 시장 이전을 기정사실화한 채 진행했다”며 “구 시장 상인을 계속 자극해서 문제를 키우기 보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전반적으로 짚어보는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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