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노우나씽(2.18)

입력
2019.02.1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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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대 미국인당(노우나씽당)의 깃발 이민자 경계 선동의 구호가 적혀 있다. wikimedia Commons.
1850년대 미국인당(노우나씽당)의 깃발 이민자 경계 선동의 구호가 적혀 있다. wikimedia Commons.

19세기 이래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노선과 지향이 거의 180도 뒤집힌 과정, 다시 말해 노예제 폐지와 남북전쟁 승리로 북부 중심 연방정부 헤게모니를 구축한 링컨의 공화당이 현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ㆍ인종 차별적 공화당으로 변신한 과정은 다소 극적이다.

19세기 중반 서부 개척과 유럽 이민자 유입이 본격화했다. 개척 주의 노예제를 인정할 경우 서부의 남부화, 즉 남부 기반 민주당의 세력권이 확장될 게 확실했다. 노예제 당론을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북부 기반 휘그당에서 노예제 폐지를 지향하던 이들이 탈당해 1854년 공화당을 창당했다. 왕정과 가톨릭 압제를 못 견뎌 신대륙으로 건너온 당시 미국인들에게 ‘공화’는 급진적 가치였다. 1860년 링컨의 선전(善戰)으로 공화당이 집권하자 남부 11개주는 연방에서 탈퇴해 남부연합을 결성했지만 내전에서 패배하며 긴 시련기를 겪어야 했다.

반면 공화당은 전후 재건기의 정부 지출로 급성장한 북부 자본가들의 지원 속에 자본 이해를 대변하는 당으로 변모해갔고, 남부 인종 차별을 방관했다. 1929년 대공황으로 공화당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다. 32년 집권한 민주당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으로 연방정부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했고, 공화당은 ‘연방의 비대화’를 공격했다. 남부에서 긴 차별과 방관의 시대를 거쳐온 민주당은 60년대의 반 차별 인권 운동에 상대적으로 동조했다. 그 결과 그들은 흑인과 이민자를 얻었지만 남부를 잃었다.

‘노우나씽(know nothing)’은 공화당이 창당하던 1850년 당시 기승을 부린 극단적 민족주의 정치운동이다. 그들은 아일랜드와 독일계 이민자들이 개신교 중심의 미국식 공화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다. 당장 북부 노동시장이 위협을 받았다. 가톨릭 교회와 이민자를 상대로 테러와 린치를 일삼던 백인 개신교 중심의 비밀결사체들은 아예 ‘Native American Party(1845~55)’와 ‘American Party(1855~60)’를 창당했고, 정당 조직과 강령에 대해 일절 함구, ‘노우나씽 Know Nothing 당’이란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노우나씽의 미국인당은 56년 2월 18일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첫 전당대회를 열고, 그 해 대선에 전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를 출마(21.5% 득표)시키기도 했다. 그들은 공화-민주의 양당체제가 공고해지면서 50년대 말 해산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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