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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2ㆍ8 조선청년 독립선언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기미독립선언 100주년을 돌아보기 위한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그나마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기미독립선언 이후 상하이에서 창설된 임시의정원이다.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기념사업계획 역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시간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건국 과정에서 드러난 임시의정원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생각해볼 부분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서 정부 구성에 앞서 임시의정원을 창설한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임시의정원이든 임시정부든 100년 전에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기구들을 창설한 사실이 중요하지 어떤 기구가 먼저 창설되고 뒤에 창설되었는지가 왜 중요하냐는 태도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당시 지도자들이 독립된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기를 꿈꾸었는지 모른다. 과거를 뭉뚱그려진 총체로만 기억할 뿐 사건을 구체화하고 그로부터 의미를 끌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마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한 몫 할 것 같다.

임시정부 구성에 앞서 임시의정원을 창설했다는 것은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당시 지도자들이 정책 결정의 타당한 절차와 국민에 대한 대표성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식민지 상황 아래서 3ㆍ1운동으로 촉발된 독립의 열기를 확대, 지속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과 집행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절차를 따지고 대표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몇몇 지도자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위한 행동강령을 먼저 결정하고,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의회 조직은 추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임시의정원을 먼저 수립함으로써 독립을 위한 정부 기구의 조직과 행동에 대한 결정이 대표성을 지닌 기구에 의해 이뤄져야한다는 인식을 보여준 것이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이를 통치함”이라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2조의 규정은 이러한 인식과 원칙을 정립하고 있다.

그러면 작금의 국회는 위와 같은 전통을 유지하고, 절차와 대표성의 중요성을 발전시키고 있는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 의원들 간 상호 동의를 통해 국회를 개원하고도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는 행태가 심각하다. 물론 야당과 소수당 입장에서 보이콧 이외의 방법으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절차를 무시하는 행태가 너무 빈번하다는 점이 더욱 문제다. 다음으로 국회 내의 논의도 다양한 정책적 선호를 대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쟁 정당의 태도나 언행을 문제 삼는 것이 중심이 되면서 정책결정을 위한 실질적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 결과 통과되지 얼마 되지 않은 법안들이 재논의 대상으로 빈번히 등장하고, 처리를 기다리던 다양한 법안들에 대한 검토는 또 다시 후순위에 놓인다. 특히 최근에는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중요한 이슈가 제기된 상태다. 다른 무엇보다 국민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안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논의와 논쟁이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원내대표 간에 이뤄진 의회 내 개혁 일정에 대한 약속은 이미 파기되었을 뿐 아니라 논의 재개를 위한 절차에 대한 고민이나 실질적인 방안은 요원한 상태다.

식민지 조국을 뒤로 하고 상하이라는 타국 도시에서 우여곡절을 거치며 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건국의 아버지들이 기대했던 대한민국의 의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 것 같다. 기미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필요한 당면 과제가 산적한 상태에서도 의회 제도의 진정한 의미와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에 부응하고자 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의 노력과 판단을 되새겨볼 때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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