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연쇄 선물 사건

입력
2019.02.11 04:40
31면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다고? 그럼 네가 지금까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 누가 준거지? 네 부모가? 부모들이 아무 이유 없이 일 년에 한 번 너에게 선물을 잔뜩 안겨준다고? 설마 그들이 너를 그토록 사랑한다는 거야?

영국의 드라마 시리즈 ‘닥터 후’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꿈속에 등장한 산타클로스가 했던 대사다. 물론 부모들 대부분은 자식을 그토록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아무 대가 없이 선물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최소한 사랑과 감사는 기대한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 역할을 대신 할 때는 좀 다를 것 같다. 아이가 이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선의만으로 선물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니 크리스마스에 부모들은 정말로 산타클로스가 된다. 아무려나 아이들이 그 시즌에 가장 열광하는 로봇이나 인형, 혹은 자전거라도 살 능력이 있는 부모여야 하고, 이따금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 안 준다고 을러대기도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한참 지났으나, 굳이 산타클로스를 불러낸 이유는 번역하던 책에서 ‘선물은 불가능하다’는 구절을 만났기 때문이다. 선물이란 받는 이에게는 채무가, 주는 이에게는 보답에 대한 기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석학들의 논의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 은연중에 모두들 동의하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도 선물을 받는 순간에는 부담보다 기쁨이 크다. 선물의 효과도 선물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일 테다. 주는 기쁨도 받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결코 작지 않다. 베푸는 것으로 우위에 서게 되는 으쓱함 말고, 뭔가를 훌훌 털어버리는 기쁨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 전에 아들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왔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인데 주말에 서울에 볼 일이 있어서 올라오는 길에 아들을 보러 온다고 했다. “여자 친구 둘이야. 그냥 친구인데, 자고 갈 거야.” 아들이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좀 놀랐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아들 친구들은 토요일 저녁 늦게 장을 봐가지고 왔고, 자기네들끼리 전골을 만들어 먹었고,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내내 나는 방에 머물렀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번역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흐뭇했다. 신뢰할 만한 부모로 인정받은 거 같기도 하고, 서사가 빤하지 않은 책을 선물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이사 온 뒤로 김장 김치며 밑반찬을 종류별로 나눠주던 동네 친구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삿짐 옮기는 날, 친구가 키우는 갈색 푸들이 우리 집에 잠시 머물렀다. 강아지는 내가 앉아서 일하는 바로 등 뒤에서 놀기도 하고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 내가 잠시 침대에 눕자 뛰어올라와 옆에 누워 잠들었다. 이따금 잠꼬대처럼 으르렁거리고 한숨을 푸 내쉬었다. SNS의 동영상 속 동물들의 귀여움과는 좀 다른, 영혼이 녹아버릴 듯 존재감 있는 선물이었다.

설날에는 해야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차로 15분 거리 밖에 안 되는 부모님 댁을 찾지 않았다.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셋째 언니가 전화를 했다. 우리 집 앞에 있으니 얼른 나오라면서. 언니는 집에서 만든 만두와 전을 건네주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가버렸다. 덕분에 그날 저녁 나는 설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행복했다.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해가 올 즈음에 경험한 연쇄 선물 사건들이다. 원래 선물을 좋아하지만 새해부터 더 좋아하기로 했다. 별다른 경계 없이 헐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선물을 주는 이들을 모두 산타클로스로 여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제 아무리 대단한 선물을 받아도 내가 돌려줄 수 있는 것은 그 호칭뿐이다. 선물은 불가능하지 않다. 아무쪼록 일 년 내내 연쇄 선물 사건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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