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난한 나라가 난민 수용하는 모습에 뭉클했어요”

입력
2019.02.09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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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규 코이카 방글라데시 사무소장 인터뷰 

조현규 코이카 방글라데시 사무소 소장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의 삶’을 살면서 발 딛고 선 곳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삶"을 코이카 직업의 매력으로 꼽았다. 코이카 제공
조현규 코이카 방글라데시 사무소 소장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의 삶’을 살면서 발 딛고 선 곳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삶"을 코이카 직업의 매력으로 꼽았다. 코이카 제공

“재작년 방글라데시가 90만 로힝야 난민을 수용하는 과정을 가깝게 지켜보면서 뭉클했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국민이 없는 살림에 나눠가며 난민을 먹였거든요.”

나눔의 실천이 환경과 무관하단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의지에 따라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도 현실로 만들어내는 사례를 체험하면서다.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조현규(41)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하 코이카) 방글라데시 사무소 소장이 전한 현지의 난민 캠프 실상이다. 조 소장은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며 “난민 문제가 현실의 실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방글라데시 소장으로 근무 중인 그는 지난달 28일부터 나흘간 열린 ‘2019년도 해외사무소장 본부 확대전략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조 소장은 2000년 군 대체복무로 코이카 자원봉사대원에 지원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이후 2005년 코이카에 정식 입사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코이카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에서의 지원사업이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인구밀도가 최상위인 방글라데시의 경우엔 최악의 근무지로 꼽힌다. 조 소장은 “파견 후 넉 달 만에 발생한 외국인 대상 테러로 일본국제협력단 활동가 6명이 살해됐고, 이후 집 밖을 벗어날 때는 반드시 자동차로 이동한다”고 불안한 현지 치안상황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이카는 현지 지원 인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간호전문대학을 설립하고, 주거환경개선 사업도 진행했다. 적지 않은 외교적인 실리와 직접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방글라데시 인구가 1억7,000만명으로 정부가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인구를 다 합친 것과 같다”고 전했다. 이어 “10년간 경제성장률이 7%이상을 기록한 방글라데시는 아직 최빈국으로 꼽히지만 국내총생산(GDP)은 10년 후 우리나라와 맞먹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가능성을 보고 이미 대기업들이 진출했다”며 “한국에 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원조, 지원 기구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규 코이카 방글라데시 사무소 소장이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코이카 제공
조현규 코이카 방글라데시 사무소 소장이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코이카 제공

2017년 8월 로힝야 난민 사태가 발생하며 조 소장의 일은 두 배로 늘었다.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의 일부 무장단체가 경찰 초소를 습격하며 시작된 미얀마 군부의 ‘인종 청소’로 로힝야족 약 90만여명이 방글라데시로 건너왔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는 그 해 말 로힝야 난민을 2년 안에 본국에 송환한다는 데 합의, 지난해 11월부터 진행하려 했지만 신변 안전을 우려한 난민들의 반대로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조 소장은 “국제사회의 시선도 있지만 무엇보다 총선을 앞둔 여당이 여론을 의식해 난민 수용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며 “방글라데시 국민은 박해 받는 이슬람민족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치른 총선에서 여당 아야미연맹(AL)은 압승했다.

코이카는 유엔, 비영리법인(NGO) 단체와 함께 로힝야 난민 여성·아동 심리회복 사업, 난민 보건 서비스 지원사업 등을 진행했다. 최근엔 NGO인 한국 JTS와 가스버너 10만대를 기부했다. 식량을 지급해도 연료가 부족해 난민들이 생쌀을 먹거나 숲으로 땔감 구하러 갔다가 성폭력이나 강간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 소장은 우리나라도 이제 난민에 대한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한정된 자원으로 파급력 높은 지원사업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일제강점, 한국전쟁을 겪으며 ‘이주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도 인도적 관점으로 난민 문제를 고민할 때 전 세계가 한국을 보는 이미지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난민 문제 해결의 선결 조건도 조언했다. “최근 일본이 외국인노동자 35만명 수용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통과시켰잖아요. 보수적인 아베 정권도 인구 감소가 경제불황으로 이어질까봐 현실적인 판단을 한 거죠. 한국의 난민 혐오 문제도 실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가짜 난민’을 제대로 거를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겠지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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