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두 대통령 사태 장기화 조짐

입력
2019.02.07 16:43
수정
2019.02.07 18:2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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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이도 지지’ 미국은 ‘군사적 옵션’ 시사

마두로는 ‘군부 지지’ 등에 업고 버티기

후안 과이도(왼쪽 사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후안 과이도(왼쪽 사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베네수엘라의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등에 업은 ‘임시 대통령’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과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받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날 선 공방을 주고 받고 있지만, 어느 한 쪽으로 확연히 추가 기울지는 않고 있다. 이에 중립을 내세운 일부 국가들은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마두로 정부는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원조마저 막아 설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가수비대는 전날 콜롬비아 국경도시 쿠쿠타와 베네수엘라 우레나를 연결하는 티엔디타스 다리에 유조 탱크와 화물 컨테이너를 배치하고 임시 울타리를 설치했다. 쿠쿠타는 국제사회의 구조물품이 집결하는 장소로, 이 다리를 통해 과이도 의장이 지난달 국제사회에 요청한 식료ㆍ의료품이 베네수엘라로 전달될 수 있다.

마두로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건 해외 원조가 내정간섭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 RT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원조물품 전달은 미국의 군사개입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굶주리는 국민에게 원조가 도달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과이도 의장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 역시 강공을 이어가고 있지만, 결정적 계기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베네수엘라 정부에 경제제재를 가한 데 이어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일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에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변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하나의 옵션”이라고 답했다. 여기에 지난달 26일 마두로 대통령에게 ‘8일 안에 조기 대선 실시 계획을 발표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던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최근 과이도 의장을 공식 인정하며 마두로 대통령을 코너에 몰았다.

그렇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여전히 건재하다. 바깥에선 러시아와 중국의, 안에선 군부, 법원, 석유기업 페데베사(PDVSA)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군부 고위층이 저버리지 않는 한 실각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비록 지난 2일 프란시스코 야네스 공군 장군이 과이도 의장 지지를 선언하며 첫 고위급 현역 장교 이탈자가 됐지만, 대부분 장성들은 여전히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 기간 장성 숫자를 2,000명으로 늘려 야네스 장군은 전체 장성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 때문에 반(反)마두로 진영은 군부 설득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야네스 장군의 이탈 직후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모든 군인에게 야네스의 선례를 따르길 요구한다”고 했으며, 6일엔 “미국은 민주주의 쪽에 서는 베네수엘라 고위 군 관리에게 제재 면제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유혹했다.

사태가 장기화하자, 중립지대에서는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멕시코와 우루과이 정부는 6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즉각적인 대화-협상-확약-이행’으로 이뤄진 4단계 해법을 제안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전날 “베네수엘라에서 요청이 온다면 양쪽을 중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이도 의장은 교황의 중재가 마두로 대통령의 시간벌기일 뿐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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