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영리병원’ 좌초 위기… 졸속 허가가 낳은 예견된 재앙

입력
2019.02.06 18:52
수정
2019.02.07 06:4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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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녹지병원 의사 9명 전원 사직… 개원 한달 앞인데 준비 손놓아

제주 서귀포시 제주헬스케터타운 내에 위치한 녹지국제병원 전경. 녹지국제병원 제공.
제주 서귀포시 제주헬스케터타운 내에 위치한 녹지국제병원 전경. 녹지국제병원 제공.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개설 허가를 받은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개원이 불투명해졌다. 개원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녹지병원의 개원 준비는 사실상 백지상태다. 오히려 당초 무리한 조건을 내세웠던 제주도 등을 상대로 녹지병원측의 법적 소송 가능성마저 점쳐지면서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6일 도에 따르면 녹지병원이 지난해 12월 5일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내용의 조건부 개설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의료법에 따라 3개월(90일) 내인 3월 4일부터 진료를 개시해야 한다. 이때까지 개원하지 않으면 청문회를 거쳐 녹지병원의 의료사업 허가는 취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도가 허가를 내준 지 두 달이 넘도록 녹지병원측은 개원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개원 준비에도 손을 놓고 있다. 현재 의사 한 명도 없는 녹지병원측에선 개원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인데도 의사 채용 절차마저 진행하지 않고 있다.

앞서 녹지병원은 2017년 8월 도에 개설 허가를 신청할 당시에는 의사 9명, 간호사 28명, 국제코디네이터 18명, 관리직 등 총 134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개원이 1년 넘게 미뤄지면서 의사 9명 전원이 사직한 것은 물론 현재 인력도 당초 채용인원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개원을 위해선 의사를 다시 채용한 후 의사면허증을 제출하는 등 개원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데도, 녹지병원은 현재까지 도에 병원 개원과 관련해 진행하고 있는 절차는 전무한 상태다. 이 때문에 앞서 소송 가능성을 내비친 녹지병원이 개원 대신 법적 다툼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녹지그룹이 병원사업을 철회하게 되면 약 8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손해배상 명목으로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녹지병원은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개설 허가가 이뤄진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도에 공문을 보내 진료 대상을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한정한 것에 대해 ‘극도의 유감’이라는 표현까지 담아 “도의 행정처분에 대해 법률절차에 따른 대응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소송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녹지병원 관계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상황에서 내국인 진료도 제한할 경우 병원 운영 자체가 어렵다. 현재 개원 여부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내부 분위기로는 다음달 개원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녹지병원 안팎에선 도의 신중치 못한 행정에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당초 도에선 도민들의 공론조사 결과까지 뒤엎고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내준 가장 큰 배경엔 허가 불허시 녹지병원측에서 제기할 손해배상 문제가 꼽혔다. 하지만 허가를 내준 이후에도 결국 소송전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졸속행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허가 이전부터 녹지병원이 내국인 진료 제한에 반대 의견을 제시해 소송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도에서 충분한 협의 없이 녹지병원 개원을 강행시켰다는 비판에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녹지병원의 소송 제기와 관련 “직·간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나 문서나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것은 없다. 행정이 미리 앞질러 경우의 수를 대비할 필요는 없다”며 “녹지측에서 어떻게 최종 결론을 내릴지 단언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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