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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 
임순영 특보는 지난해까지 ‘여성계 대모’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 보좌관으로 6년여간 근무했다. 그는 “국회에서 좀 더 포괄적인 이슈를 다뤘다면 서울시에 오니 출근길 시민 보는 시선부터 달라지더라. 제 역할에 따라 시민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혜윤 인턴기자

지난달 15일 서울시 시장실 직속엔 생소한 직위가 생겼다. 이름하여 젠더(성)특보. 이날 젠더특보로 임명된 임순영(54) 전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주어진 임무는 박원순 시장의 성평등 관련 정책 수립과 추진 방향 자문이다. 시정 전반에 성인지 관점을 반영하는 가교 역할도 그의 몫이다. 임 특보는 앞서 한국성폭력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여성자문기구 의장 사무국장,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연구원,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연구담당관 등을 역임했다.

국내 대표 여성정책 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명절을 어떻게 보낼까. 30년간 젠더 관련 연구, 활동을 해오면서도 가정에선 인지부조화를 경험하지 않을까. 성별 간 평행선을 긋는 성인지 감수성, 그로 인해 발생한 범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계획일까.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청에서 만난 임 특보는 ‘명절에 전은 부치시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명절에 부엌일을 여자가 하게 되니까 남자도 함께 하도록 개입한다”며 “저희 집은 청소를 남자들이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임 특보는 대학원에선 여성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집안 내 성별분업이 그의 진로를 바꿔 놓은 배경이었다. 그는 “학부 사회운동 수업 맨 마지막 시간에 여성운동을 배웠는데 아주 크고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면서 “어머니가 맏며느리로 시집살이를 호되게 하셨는데 왜 여성이 여성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궁금증이 있었다. 강의를 통해 가부장적 질서, 구조를 알게 됐고 그 윤곽이 그려졌다”며 여성학에 몰두한 배경을 설명했다. 여성학은 1980년대 초반 대학원 석사과정에 정식 학과로 개설됐고, 임 특보는 1991년 졸업 후 막 문을 연 한국성폭력상담소 총무로 사회활동에 들어섰다.

박 시장과의 인연은 그로부터 2년 후, 성폭력상담소가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 소송을 지원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던 박 시장은 이 사건의 피해자 변론을 맡았다. 임 특보는 “그때 신문에 ‘어깨 치면 3,000만원, 훑어보면 2,000만원’ 하는 식의 기사가 나올 정도로 성희롱이 생소한 개념이었다”며 “한데 박 시장이 성희롱 관련 해외 법 이론과 판례를 많이 알고 계셨고, ‘한번 싸워볼 만하다’면서 변론을 제안해 성폭력상담소와 여성단체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임 특보는 이후 2008년부터 2년간 희망제작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박원순 상임이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서울시 첫 젠더특보로 임명된 임순영 전 국회의원 보좌관. 김혜윤 인턴기자

‘상사 박원순’의 업무 스타일에 대한 질문에, 임 특보는 망설임 없이 “대단한 분”이란 말로 대답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파악하고 부지런히 다니며 새로운 걸 찾아내고 집행하시죠. 그래서 실무자한테 과제도 많이 주시고요(웃음).” 상사의 젠더 감수성에 대한 평가에 대해 임 특보는 “기본적으로 살아온 역사가 있지 않나”라며 되물었다. 임 특보는 이어 박 시장의 시정 철학엔 이미 젠더에 대한 소신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안심귀가 스카우트, 안심택배 운영, 안심 보안관 제도 등 정책에서 젠더 감수성이 앞서 간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젠더 이슈가 역동적이고 빠르게 변하고 특히 세대별로 관점 차가 크죠. 제 소임 중 하나가 빠르게 변하는 다양한 의견, 갈등을 빨리 파악해 보고하고 판단하도록 돕는 거라고 봐요.”

올해부터 서울시는 여성권익담당관을 신설해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고용차별과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담당하는 성평등노동팀도 신설했다. 성별·고용형태별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성평등 임금 공시제 역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부터 시범운영할 계획이다. 임 특보는 “서울시 안전, 복지, 일자리 정책에 젠더자문관(5급 팀장급)이 개입할 수 있는 협조결재 제도가 있다”며 “가능성을 타진해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 도시공간, 주택 등 더 많은 정책에 성인지 관점이 반영되는 체계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임 특보는 젠더 문제와 경제적인 상관관계도 무관치 않다고 강조했다.

“2018년 매킨지 보고서 ‘평등의 힘:아시아태평양에서 여성 평등 신장’에 따르면 한국이 직장, 사회에서 남녀불평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 202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이 1,600억달러(173조원·2016년 기준 GDP 9%) 증가한대요. 여성 역량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그 만큼 사회 전체가 나눌 수 있는 역량도 커질 겁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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