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법정구속, “피해자 중심 판단” 성인지 감수성이 갈랐다

입력
2019.02.01 17:35
수정
2019.02.01 21: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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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한 사실관계에도 1심 판단 뒤집어… 피해자 진술 신빙성ㆍ업무상 위력 모두 인정 

 “명시적 거부 없어도 정황상 비동의면 유죄” “정상적 관계 아닌 것 안희정도 알았다” 

 

지위를 이용한 수행비서 성폭력 혐의 1심 무죄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항소심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위를 이용한 수행비서 성폭력 혐의 1심 무죄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항소심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은 수사 단계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했다. 1심은 ‘위력은 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이 이 모든 것을 뒤집고 유죄 판결을, 그것도 단 세 차례의 공판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성인지 감수성’ 때문이다.

피해자인 김지은 전 수행비서의 진술 가운데 다소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해도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처지와 맥락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에 입각해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 홍동기)는 검찰이 기소한 안 전 지사의 10차례의 범행 가운데 한 번의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우선 1심 법원과 달리 김 전 비서 진술의 신빙성이 모두 인정됐다. 사소한 부분에서 다소 일관성이 없거나 최초 진술이 다소 불명확하게 바뀌었다 할지라도 주요 부분에 있어 일관성이 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또 김 전 비서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게 된 경위가 자연스럽고, 안 전 지사를 무고할 동기나 목적도 찾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처 양상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진술을 가볍게 배척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비서가 간음 이후 피해자로 보기 힘든 행동을 했다는, 소위 ‘피해자다움’에 대해서도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사정만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며 피해자 측 손을 들어줬다. 간음 뒤에도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식당을 찾고, 주변 동료들에게 애교 섞인 표현이 담긴 메시지를 보낸 점 등이 피해자스럽지 못하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아침 식사 등은 수행비서 업무에 속한다”며 “김 전 비서가 사건 이후 업무를 중단하고 바로 귀국하는 등 즉각적 조치 취하지 않기로 한 이상, 그런 행동이 성범죄 피해자가 도저히 보이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위력도 폭넓게 인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명시적 거부의사 표시가 없더라도 피해자가 정황상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 피감독자 간음죄가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안 전 지사의 1심 판결 이후 여성계에서는 “적극적이고 명시적인 반대 의사가 없더라도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권력관계 아래 놓인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면 김 전 비서의 행동을 이상하다 볼 수 없고, 안 전 지사의 위력 행사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있었던 첫 간음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가 출장 비행기에서 구토를 하는 등 체력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였던 점, 출장 이전 안 전 지사에 대한 이성적 감정이나 흠모 등 인정할 만한 자료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성관계 전 김 전 비서가 동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권력적 상하관계 아래 놓인 수행비서는 적극적 저항 등 성적 자기결정권 자유롭게 행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가 20살 연상의 유부남인 점, 직장상사인 점을 감안할 때 피해자와 ‘정상적인 남녀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성적인 감정으로 성관계에 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안 전 지사도 인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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