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위험한 대선불복론

입력
2019.02.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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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가짜뉴스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많자 전문가들이 분석에 나섰다.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힐러리 클린턴 건강이 좋지 않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 ‘힐러리가 이슬람 지하드에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등 대선 당시의 3가지 주요 가짜뉴스를 적용해 조사를 했다. 결과는 2012년 오바마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23%가 힐러리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가짜뉴스가 트럼프 지지율을 올리진 않았다 해도 힐러리 지지를 약화시키는 역할은 했다”고 결론내렸다. 반면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가짜뉴스 덕분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 국내서도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이 드러나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는 ‘대선 직전 이 사실이 밝혀졌다면 누구에게 투표했겠는가’라는 설문의 응답을 근거로 박근혜 후보 득표율은 51.55%에서 44.9%로 낮아졌으나 문재인 후보는 49.02%에서 54.67%로 높아져 당락이 바뀐다고 밝혔다. SNS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공모 혐의가 1심에서 인정되자 일각에서 2017년 대선 영향력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지사 공소장에 제시된 댓글 조작 건수(8,840만회)가 국정원 댓글 사건(41만회)의 수백 배라며 영향력을 부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2012년 대선 개입은 국정원뿐 아니라 군 사이버사와 기무사, 경찰 등 권력기관이 죄다 달려들었다. 동원된 인원은 수백 명으로 드루킹 사건 가담자 10명과 비교가 안 된다. 국정원 댓글만 해도 수사 전에 대부분 없애 실제 유통 규모는 100배 이상으로 추정됐다. ‘킹크랩’ 같은 강력한 매크로 프로그램도 없었던 때니 지금이었다면 천문학적 규모였을 것이다.

□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의 공세는 사실상 ‘대선 불복’에 가깝다. 당내에서는 “대선 무효” 얘기도 나온다. 과거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국정원 대선 개입을 문제 삼자 “박 후보를 지지한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도전”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어차피 댓글 영향력 입증도 불가능한 사안에 지나치게 정략적 이득만 따지면 역풍을 부를 수 있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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