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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ㆍ성과 양축으로 포용국가 외친 대통령
김현철 설화ㆍ민노총 외면에 김경수도 휘청
설 계기 ‘정치속성’ 궤뚫는 열린지혜 구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김현철 경제비서관을 설화를 빚은 지 하루 만에 경질한 것은 전혀 ‘문재인스럽지’ 않은 탓에 더 큰 뉴스가 됐다. 김현철이 누군가. 장하성 홍장표와 함께 소득주도성장 브랜드를 설계하고 이끌어 온 ‘강단 트로이카’의 주축이자 지금껏 남은 멤버다. 문 대통령이 새해 들어 “변화는 두렵고 논란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거듭 확신하며 이 브랜드를 ‘혁신 포용국가’로 확장하고 속도를 조절할지언정 방향 전환은 없다고 밝혀 그의 자리는 탄탄해보였다.

문 대통령도 처음엔 ‘해피 조선’ 비유로 청년층을 자극하고, 박항서 감독 사례와 댓글 운운하며 산을 찾는 중ㆍ장년층의 화를 돋운 발언 파문을 가볍게 여긴 듯했다. 자신의 신남방정책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CEO를 대상으로 아세안과 인도 등의 기회를 강조하다 나온 실수인 만큼 해명과 사과로 넘어갈 일로 봤을 것이다. 그런 문 대통령이 교체를 결심한 데에는 노영민 비서실장 등 청와대 2기 참모의 건의가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부진한 민생 성과와 잇단 내로남불 논란으로 지지층이 분열하는 시점에, ‘체감 성과’를 집권 3년 차 화두로 내걸고 소통과 대화에 집중하는 시기에 전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낸 대통령 측근을 그냥 안고갈 경우 민심이 등돌릴 위험이 너무 크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결국 확신과 내 사람 편애가 남다른 문 대통령도 이 건의를 수용했고 파문은 에피소드로 축소됐다. 정치란 이런 것이다.

앞서 야당이 김정숙 여사와의 관계를 들어 초권력형 비리라고 매도했던 ‘손혜원 의혹’에선 이낙연 국무총리의 방식이 빛난다. 그는 의혹이 불거진 후 민주당이 방향을 못잡고 헤매며 야당 등의 조롱을 자초하자 ‘콜롬버스의 달걀’같은 해법으로 여당 지도부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여러 문제가 불거져 걱정들이 나오고 있는데 정부 여당이 국민 앞에 더 겸허해지자”는 그의 쓴소리는 간단하고 상식적이지만 메시지는 컸다. 사실상 “여당이 좀 잘하라”는 질책이었으니 말이다. 총리가 하기 힘든 말을 문 대통령과의 주례회동 다음 날 내놓은 뜻도 있었을 것이다. 이 일로 손 의원 파장이 잦아든 것은 아니나 논점이 명확해진 것은 사실이다. 정치란 이런 것이다.

청와대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달라는 문 대통령의 요청을 끝내 외면하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밝혔다 “경제사회노동위가 이미 출범한 만큼 민노총이 불참해도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탄력근로제 확대 등 예정된 일정을 밀고 가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양대 노총 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치해 “최저임금 노동시간 노동안전 등에서 노동권의 개선이 이뤄져야 하지만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로 노동권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바람”이라고 간곡하게 설득하면 체면을 봐서라도 대화 테이블엔 나와 줘야 하는데 냉대로 일관하니 그럴 만도 하다. 누구보다 노동친화적인 대통령의 상심이 깊어지겠으나, 멀리 찬찬히 보지 못하고 밥상마저 걷어찬 세력에게 끌려다니는 짓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기득권 노동계의 양보와 고통 분담을 요구하지 못하면 포용국가는 그림 속의 떡이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지금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아픔은 정치를 넘어 고락을 함께 해 온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고난일 것이다. 1심 판결이라고는 하지만 드루킹 일당과 댓글 조작을 공모한 ‘특수 협력관계’ 낙인이 찍히고 법정 구속된 것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다. 노무현의 죽음에 버금가는 괴롭고 어려운 상심의 시기를 건너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다시 한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보면 풍경은 확 바뀐다. 문 대통령의 임무는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겠다”고 한 노무현과의 약속을 지켜야 끝난다. 버리고 놓고 떨어져 보는 것, 정치도 때론 그런 것이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관저 앞 인수문을 활짝 열어놓으세요. 그래야 사람도 들고 바람도 들지요”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설 연휴를 맞아 인수문으로 많은 어른과 지혜가 드나들기 바란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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