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의 멍멍, 꿀꿀, 어흥] 황금돼지보다 '진짜 돼지'의 비극적 삶에 관심 갖기를…

입력
2019.02.01 16:00
수정
2019.02.01 19:1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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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형 농장에서 어미돼지가 볏짚 위에서 새끼를 낳고 있다. 황윤 감독 제공
동물복지형 농장에서 어미돼지가 볏짚 위에서 새끼를 낳고 있다. 황윤 감독 제공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에서 베이브는 전국 양몰이 대회에 출전해 100점을 받아 전국 최고의 양치기가 된다. 물론 허구다. 하지만 실제로 돼지가 양몰이쯤 못 할 것도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에 따르면 돼지는 개 못지않게 지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브의 농장주 역할을 맡은 배우 제임스 크롬웰은 영화를 찍은 후 완전 채식을 하는 비건(vegan)이 되었고, 동물권 운동가가 되었다. 돼지가 얼마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인지 비로소 깨달았고, 영화와 달리 현실 속 돼지들은 처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각본과 제작을 맡은 조지 밀러는 “돼지에게는 비극적인 색채가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오직 고기를 위해 키워졌는데도 돼지들이 아직까지 영리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나는 두 손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돼지는 억울한 동물이다. 그들처럼 인간에게 희생을 많이 당하면서도 욕을 많이 먹는 동물도 없다. 돼지는 배설 장소를 스스로 구분할 정도로 깨끗한데 더럽다는 오명을 쓰고, 결코 과식하지 않는데 식탐 많다고 오해받는다. 인간은 돼지를 먹으면서도 그들을 홀대하고 제도적으로 학대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공장식 축산을 일컬어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라고 했다. 인간은 오랜 세월 다른 동물을 사육해 왔지만 이렇게 대우한 적은 없고, 오랜 세월 동물을 먹어 왔지만 이렇게 많은 동물을 먹은 적은 없었다. 한국인은 연간 1,500만마리의 돼지를 먹는다. 99.9%의 돼지들이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사육된다.

공장식 양돈농장에서 어미돼지는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스톨'이라는 쇠틀에 갇혀 사육된다. 황윤 감독 제공
공장식 양돈농장에서 어미돼지는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스톨'이라는 쇠틀에 갇혀 사육된다. 황윤 감독 제공

조지 밀러의 말처럼 돼지는 비극적인 동물이다. 암퇘지는 강한 모성애를 갖고 있고 출산 전 볏짚으로 둥지를 만드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공장식 양돈농장에서는 자신의 몸 크기만한 스톨(감금틀)에 갇혀 살아간다. 스톨에 갇힌 채 인공 임신되고, 분만용 감금 틀에 갇혀 새끼를 낳는다. 출산한 새끼 수에 따라 ‘성적’이 매겨지고, 성적이 안 좋으면 도축장으로 보내진다. 새끼돼지는 태어난 지 겨우 3, 4주 만에 어미로부터 분리되고 수컷은 생후 6개월 만에 110㎏의 몸무게가 되어 도축장으로 보내진다. 햇빛도 바람도 통하지 않고 분뇨와 악취로 가득 찬 사육장에서 돼지들은 여러 병에 걸린다. 많은 돼지들이 6개월의 짧은 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도태된다. 살처분으로 모든 돼지를 매장한 양돈농장을 촬영하며 곳곳에 나뒹구는 온갖 약병들을 목격했다. 호흡기질환 치료제, 장 치료제, 피부병 약, 심장약, 호르몬제, 항생제 등이었다. 한편으론 분뇨로 인한 오염, 메탄가스로 인한 기후 변화로 지구는 종말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돼지의 해. 예부터 복을 부르는 동물이라며 돼지를 칭송하다가 돼지고기를 먹는 ‘먹방’(먹는 방송)을 보면 현기증이 난다. 먹자골목에서,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소비되고 욕망되는 돼지. 실존하지 않는 ‘황금돼지’보다 ‘진짜 돼지’들의 삶에 우리 사회가 관심 갖기를. 돼지들의 비극은 곧 인간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황윤 ‘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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