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멸종위기종 보전ㆍ동물복지에 앞장... 영국 브리스틀 동물원의 교훈

입력
2019.02.01 14:00
수정
2019.02.01 19:1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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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리스틀 동물원에서 고릴라가 종이상자 안에 숨겨둔 먹이를 찾아 먹고 있다. 양효진 수의사 제공
영국 브리스틀 동물원에서 고릴라가 종이상자 안에 숨겨둔 먹이를 찾아 먹고 있다. 양효진 수의사 제공

영국 브리스틀 동물원(Bristol Zoo Gardens)은 1836년 문을 열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나이가 많은 동물원이다.

만들어진 시대에 지금까지 멈춰 있는 동물원들을 많이 보았다. 콘크리트 바닥과 녹슨 철장, 천편일률적으로 동물들이 사는 환경을 보여주고 동물들의 고통을 외면해 오히려 역효과만 나는 동물원 말이다. 그런데 브리스틀 동물원은 뭔가 달랐다. 물론 낡은 건물도 있었지만, 겉모습보다 현대 동물원의 동물 복지와 보전 의무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종 수를 줄이고 종마다 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 동물원은 보전을 위해 멸종위기종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5헥타르(㏊)라는 작은 동물원의 한계와 새로운 동물원의 역할을 명확히 파악한 것이다. 백화점식으로 좁은 곳에 전시하던 동물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아시아사자와 고릴라 등이 더 넓은 공간을 쓰도록 했다.

동물들의 공간 활용을 늘리고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자율 입방사’를 선택했다. 밤에는 내실에 갇혀 있는 다른 동물원의 동물들과 달리 24시간 내내 내실과 외부 방사장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곳에는 ‘윙컷(wing cut)’ 금지 정책도 있다. 과거에는 사육사가 홍학의 날개깃을 정기적으로 잘라 멀리 날지 못하게 했었다. 홍학은 하늘이 열려 있는 공간에서 살 수 있었지만 날개를 자르는 것은 사육사에게나 잡히는 홍학 모두에게 스트레스였다. 이 동물원은 홍학과 다른 새들이 함께 살도록 하면서, 천장에 망을 씌우고 윙컷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새들은 날 수 있었고 번식도 잘되기 시작했다.

영국 브리스톨 동물원 내 홍학이 날 수 있는 야외방사장. 양효진 수의사 제공
영국 브리스톨 동물원 내 홍학이 날 수 있는 야외방사장. 양효진 수의사 제공

무엇보다 브리스톨 동물원이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유는 보전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보전을 위해 들어온 기부금은 보전에만 사용한다는 점도 좋았다. 이곳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일반인들의 기부금으로 운영한다. 오래된 동물원이니 환경 개선에 예산을 쏟아도 모자랄 텐데 기부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충실한 보전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우원숭이 보전을 위해 마다가스카르의 숲을 조사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원하고, 필리핀에서는 야생동물 사냥꾼을 자연공원 관리원으로 일할 수 있게 돕는다. 카메룬에서 기린을 위협하는 원인도 연구한다. 모두 장기적인 프로젝트이며, 동물원의 도움이 필요 없을 때까지 돕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나니, 오래된 일부 동물사가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과거 브리스톨 동물원에는 북극곰이 있었으나 현재는 북극곰이 존재했다는 사진만 남아있다. 양효진 수의사 제공
과거 브리스톨 동물원에는 북극곰이 있었으나 현재는 북극곰이 존재했다는 사진만 남아있다. 양효진 수의사 제공
영국 브리스톨 동물원에서 멸종위기 아시아 사자. 양효진 수의사 제공
영국 브리스톨 동물원에서 멸종위기 아시아 사자. 양효진 수의사 제공

겉은 낡았지만 속은 충실했다. 추구하는 방향도 분명했고 실행력도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안심하고 기부할 수 있지 않을까.

영국의 동물원법이 시대에 맞추어 발전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법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영국도 지금의 한국 일부 동물원이나 동물카페처럼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데 동물원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다가는 사람들의 외면과 질타를 받기 쉽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알고, 미래에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원이 많아지길 바란다.

글ㆍ사진= 양효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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