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이 정부는 얼마나 실용적인가

입력
2019.01.30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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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과거 ‘예타’ 입장 180도 전환

보수ㆍ진보 양 진영 ‘예타’ 면제 비판

토건사업 회귀에 국가전략 있나 의문

노무현 정부 시절 운동권 출신인 한 청와대 행정관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나라가 보이더라”는 취지의 얘기였다. 그 말을 들어보니 노무현 정부가 좌측 깜박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평을 들었던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이라크 파병 등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결정적 계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 진보 진영의 반대에도 노 대통령이 밀어붙였으니 그런 얘기가 나올 만했다. 나라 경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지만 양극화라는 부작용이 심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 명암을 두루 살펴도 이 나라는 대체로 세계화 흐름에 잘 올라탔다. 정권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심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집토끼’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FTA라는 세계화의 거센 흐름을 타기로 결정했다. 정제되지 않은 말로 여러 구설을 낳고, 정치적으로 이념 지향성이 강하긴 했지만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 등 여러 사람의 회고록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치열한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고, 결정적 순간에는 대체로 실용주의에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29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24조원 규모의 16개 시도 23개 대형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조치가 유사한 성격을 띤다고 본다. 진보진영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공공사업의 경제성을 따지는 절차로 정부의 면제 조치가 세금낭비 정책이라는 지적이 진보ㆍ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정부로서도 큰 방향 전환일 수밖에 없는 게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에 대한 과거 발언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해 국민혈세 22조원을 낭비했다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강행을 강력 비판한 문 대통령 발언이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이 과거 예비타당성 조사 범위를 강화하는 입법안을 낸 사례들도 도마에 오른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실정으로 꼽는 4대강 사업이 갈지자 행보의 근거가 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4대강 사업과는 다르다는 게 이 정부의 주장이나 4대강 조사평가단 민간위원장인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4대강 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과제를 던져 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이중적인 잣대로 국정을 운영해 온 것인가”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퇴 의사를 내비칠 정도니 진보진영 내부적으로도 파장이 적지 않다.

역사가 증명하듯 대규모 토건사업만큼 일자리 창출과 경제에 눈에 보이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용 선심, 측근인사 배려 정책이라는 비판은 국회 통과 여부 등 사업 추진의 진로를 위태롭게 한다. 16개 광역시도 숙원사업에 대한 기계적 안배와, 과거 두 차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던 4조원짜리 철도사업까지 공격의 빌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논란이 가열되는 예비타당성 면제 조치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심각한 고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토록 비난하던 토건사업으로 회귀하느냐는 비아냥을 무릅쓸 정도로 분명한 국가 전략이 있는지 의문이다. 과거 언행을 뒤집는 일에 대해 합당한 명분과 논리가 있어야 마땅하나 이 정부 설명은 형식적이라 정치적 타산만 부각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붙들고 있지만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되레 과거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했던 지역 사업들이 적지 않은 터라 예비타당성 조사 무력화라는 평이 무성하다. 이 정부의 말과 행동이 따로 논 게 한두 번이 아닌 점은 차치하고라도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하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공약이 방향전환에 대한 진솔한 설명 없이 손바닥 뒤집듯 엎어지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정부가 얼마나 실용주의적인가에 대해 의문이 적지 않지만, 정직한가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진황 뉴스2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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