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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당 국회의원이 남녀동수법이라 명명한 선거 3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선출직 공천 과정에서 여성 후보 50% 이상 공천을 의무화하자는 내용이다. 현행법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을 30% 이상 공천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권고일 뿐이라 성비(性比)를 맞추지 않는다고 해도 불이익 규정이 없다.

정당의 공천을 받는 여성 후보가 너무 적다 보니 선거 과정에서 투표를 통해 ‘여성 대표자를 선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사는 지역구는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들도 모두 남성이었고, 구청장 후보자들도 모두 남성이었다. 성별을 고려해 투표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성인이 되고 이사를 두어 번 다녔지만 늘 그랬다.

여성 유권자를 위한 공약이랍시고 ‘아이들에게 안전한 동네’, ‘○○고 유치로 학군 개발’같은 선전을 내세운 것을 볼 때면 한숨이 났다. 아이들이 안전한 것은 좋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이런 공약이 공보물 후면에 나오는 상황 자체가 답답했다. 선거를 겪을 때마다, 학부모도, 어머니도, 아내도 아닌 한 사람의 유권자인 여성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후보의 성별을 조건으로 고려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여성 후보로 공천을 하다 보면 다른 후보들보다 더 유능한 여성도 있고 무능한 여성도 있을 것이다. 나와 정치관이 전혀 다른 여성도 있고, 지향하는 가치가 나와 잘 맞아 흔쾌히 지지할 만한 여성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 문장에서 ‘여성’이 있는 자리에 모두 ‘남성’이 있었다. 그런데 쓰고 읽기는 ‘후보’라고 읽었다. 유능한 후보, 무능한 후보, 보수 후보, 진보 후보, 이렇게 말을 했지만, 그 후보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공천은 당선을 보장하지 않는다. 유권자의 선택에 맡기기 전에, 법부터 개정하여 남녀 동수 조항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공천은 최소한의 기회균등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과 사회활동 기회가 성차별적으로 주어져 온 한국 현실에서, 후보자의 성비를 제도적으로 보정하지 않으면 여성 후보를 더 많이 공천한 정당은 더 많이 패할 위험이 있다. 같은 성적이라도 아들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내고 딸은 상업고등학교를 보낸 것이 아주 옛날도 아니고 내가 중학생 때다. 아들은 어떻게든 대학을 보내도 딸에게는 그만한 교육을 시키지 않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사회에서 직면하는 차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누적된 기회 박탈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는 피선거권을 행사할 나이대의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수준의 이력이나 직함을 가질 가능성이 다소 낮다. 그 결과, 남성이 ‘객관적으로’ 더 훌륭하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왜곡이 발생한다. 이것은 사회가 만든 차별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선출직 성비는 처참할 정도로 불균형하다.

남녀 동수 공천은 성별이라는 조건하에서 후보군을 재구성하자는 제안이다. 여성을 60%, 70% 공천하자는 것도 아니고, 선출을 절반씩 하자는 것도 아니다. 후보 성비를 딱 절반으로 맞추자는 제안은 다소 기계적이다. 그런데 이 기계적 제안에도 반발이 있다고 한다. 남녀 동수 ‘후보’조차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애당초 젠더를 투표에 고려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싶지 않다. 간신히 발언권을 얻은 한두 명이 99명의 남성 앞에서 모든 여성을 과잉 대표하는 현실도 벗어나고 싶다. 좀 더 잘하는 여성도, 잘 못하는 여성도 보고 싶다. 잘못 선택하고 후회하고, 잘 선택하고 기뻐하는 경험을 더 해 보고 싶다. 여성 후보가 있는 선거조차 사치인 현실을 넘어, 마음에 드는 여성 후보가 있는 선거를 생전에 치러 보고 싶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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