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시정연설서 ‘한국 패싱’… 북ㆍ중ㆍ러엔 화해의 러브콜

입력
2019.01.28 17:18
수정
2019.01.28 21:3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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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국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 북한, 중국 등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도쿄=AF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국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 북한, 중국 등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도쿄=AFP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북한, 중국 등과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비롯해 위안부 화해ㆍ치유 재단 해산, 한일 레이더 갈등으로 양국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올해 일본의 내정과 외교 기조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사실상 한국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다.

아베 총리는 이날 북한에 대한 외교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단 한 차례 한국을 언급했다. 그는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하겠다”며 “이를 위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대하겠다”고만 했다. 그간 적대적 관계였던 북한과의 화해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으로 우방국인 한국을 대북관계 개선에 필요한 여러 국가 중 하나로 취급했을 뿐이다.

아베 총리의 이 같은 ‘한국 홀대’는 처음은 아니다. 한국 외교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 결과 발표 이후 열린 지난해 시정연설에선 2017년까지 한국을 거론할 때 사용해 온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는 지금까지의 양국 간 국제 약속, 상호 신뢰의 축적 위에 미래지향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협력관계를 심화시켜 가겠다”고만 언급했다. 외교부 TF결과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었다.

올해는 과거사뿐만 아니라 안보분야까지 양국의 전선이 확대된 만큼 한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날 1만2,800자에 달하는 아베 총리의 연설 중 한국이 언급된 문장은 단 30자였다는 것은 한일갈등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베 총리의 연설이 우리나라 정기국회에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해당하는 만큼 굳이 외교적 갈등현안을 부각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연설에 한국 비중이 낮은 점을 굳이 한국에 대한 홀대로 연결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또 일본의 최우방국인 미국도 동북아 안보와 관련해 한일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언급을 피하면서 당분간 냉각기를 갖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대신 그간 갈등관계였던 북한, 중국,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북한에 대해선 “북한의 핵, 미사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상호불신의 껍질을 깨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만나 모든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과단성 있게 행동하겠다”며 국교정상화 의욕을 밝혔다. 지난해 연설에서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강조했으나 한미가 주도한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국면에서 ‘일본 패싱’ 논란이 불거진 만큼, 올해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에 대해선 “지난해 중국 방문으로 중일관계가 완전히 정상궤도로 돌아왔다”며 “중일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은 이어진 외교연설에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국제적인 약속을 제대로 지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 고유 영토인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명)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확실히 전달하고 끈기 있게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본 외무장관이 외교연설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장관 이후 6년째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고노 장관의 주장과 관련해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또다시 부당한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역사를 직시하는 겸허한 자세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근간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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