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명절 스트레스

입력
2019.01.28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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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최근 한 구인구직 매칭 회사가 ‘설 스트레스’ 여론조사를 했다.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기혼자가 꼽은 설 스트레스 1위는 ‘용돈, 선물 등 많은 지출’(57.9%)이었다. 이어 ‘처가, 시가 식구들’(25.3%), ‘근황을 묻는 과도한 관심’(22.1%), ‘제사 음식 준비’(21.6%) 순이었다. 지출 증가를 최대 스트레스로 꼽은 것은 남녀가 같았지만 ‘처가, 시가 식구들‘ ‘음식 준비’ 스트레스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 명절이 다가오면 단골로 공방이 오가는 주제가 ‘시월드’ 논란이다. 특히 맞벌이 여성의 명절 시댁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즈음이면 언론도 이 문제에 별난 관심을 가져 차례상 차림 노동의 불평등 등을 집중 조명한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노골적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연례행사 같은 이런 기사를 봐온 것도 꽤 오래됐으니 명절 문화, 특히 차례상 차리는 행태가 제법 변했을 것도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 한국갤럽이 몇 년 전, 설을 앞두고 성인 남녀 1,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차례를 지내는 사람 가운데는 ‘유교식으로 절을 한다’가 70%로 가장 많았고, ‘기독교식으로 기도ㆍ묵상을 한다’가 14%였다. ‘유교식’이란 흔히 보듯 교자상에 갖은 음식을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좌포우혜(左脯右醯) 하는 식으로 차리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유교식 차례가 압도적이긴 해도 그 비율이 4년 전에 비해 5%포인트 줄고, 반대로 차례 지내지 않는 가정은 6%포인트 증가했다. 느리지만 세태 변화를 보여준다.

□ 이 조사에서 인상적인 것은 명절 스트레스 종류를 물었던 앞선 여론조사와 달리 설 명절이 다가오는 게 즐거운지 아닌지 물어본 대목이다. 흥미롭게도 ‘즐거운 일’이라고 답한 사람이 51%였고 ‘즐겁지 않은 일’이라는 사람은 37%에 그쳤다. 성별로 ‘즐겁다’는 응답은 남성(55%)이 여성(48%)보다 많았지만 흔히 짐작하는 스트레스 차이만큼 그 격차가 크지는 않았다. 남녀 평등 등 사회 조류를 반영해 전통 예법도 바뀌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여러 날 휴가가 주어지는 명절은 어쨌든 누구에게나 즐거운 시간임은 분명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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