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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15>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존해 주세요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존해 주세요. 삽화=김경진기자

최근 인터넷에서 눈이 번쩍 뜨일 대자보를 하나 보았다. 누군가 장애인 주차구역에 불법주차한 것을 아파트 주민이 신고한 모양이다. 신고당한 사람이 주차장에 대자보를 써 붙였다. 신고를 했으면 차에 쪽지라도 남기지 그랬냐며 “올 한 해 고약한 암이나 잡병에 걸리기를, 가정에 우환과 온 잡병이 깃들기를 바란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불법주차를 하면 1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돈이 아까워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분노에 차 써내려 간 글을 보니 그 속에 억울함까지 느껴진다.

불법을 저지르면서 억울하다는 감정은 왜 따라오는 것일까? 사실 왜 그러는지 알고는 있다. 비어있는 주차구역에 차를 대는 게 뭐 그리 큰 잘못이냐는 인식에서 억울한 감정까지 일어났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인식은 보편적으로 확산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지금은 종영된 MBC ‘무한도전’에서 국민들을 불러 정책제안을 듣는 기획특집을 방영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정책제안이 나왔고 장애인 주차구역에 대한 문제도 거론됐다. 비어 있는 공간이 아까우니 임산부도 함께 차를 댈 수 있게 법을 개정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왔다.

패널로 참가한 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여론의 반응도 좋았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그런데 장애계의 입장은 확고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장애계가 비난을 받았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이기적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장애인 주차구역이 보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길 해보려 한다. 이 사안은 단지 주차의 문제가 아닌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이자,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 못하는데…

먼저 왜 장애인 주차구역은 늘 비어있는 것처럼 보일까? 그건 바로 장애인도 장애인 주차구역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다고 누구나 그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행상 장애가 있어야 ‘주차 가능’ 스티커를 발급 받는다. 척수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 등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장애인 주차구역이다.

보통의 주차구역과는 다르다. 차를 주차하고 나서도 휠체어를 내리고 다시 올릴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확보돼 있어야 한다. 그 공간이 확보돼 있지 않으면 차는 주차했지만 정작 휠체어는 내릴 수 없어 장애인은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행상 장애가 있는 이들만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하는 건 아니다. 시각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 내부장기 장애인 등 모든 장애 유형에서 정도에 따라 일부는 ‘주차 가능’ 스티커를 받는다.

발달장애의 경우 지적장애는 1급까지, 자폐성장애는 1급과 2급이 모두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 기준에서다. 지자체별로 조례가 다르기에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있는 장애등급에도 차이가 있다.

지적장애 2급의 아들은 장애인 주차구역 이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아들과 차를 타고 외출할 때마다 우리 가족은 늘 ‘주차 가능’ 스티커가 절실하다.

우리는 주말마다 차를 갖고 어디든 나가야 한다. 아들이 집에만 있는 시간을 지루해하고 못 견디기 때문이다. 자주 가는 곳이 대형마트와 대형서점이다. 아들은 넓은 공간에서 돌아다니길 좋아하고, 마트 시식 코너에서 소시지와 떡갈비 먹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주말 중 하루는 대형마트에 가는 게 하나의 의례처럼 돼있는데 알다시피 주말 대형마트에서의 주차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주차장에 들어가기까지 길게는 30분 동안 차도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다 간신히 주차장에 진입하고 나서도 차 댈 곳을 찾아 1층부터 5층까지 몇 번을 빙빙 돈다. 그러다 빠져나가려고 준비하는 차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앞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를 댄다.

문제는 뒷자석에 탄 아들이다. 아들은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차에서 내리고 싶다. 그런데 아빠 엄마는 빙빙 돌고만 있다.

왜 차를 멈추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가는 아들은 “잉잉~”하며 내려달라고 하는데 아빠 엄마가 내려달라는 자신의 의사 표현을 존중해주지 않으니 점점 의사표현 강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옆자리 누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안전벨트를 풀라고 하고 차 문을 열려는 시도도 한다. 남편과 나와 딸이 급한 마음에 동시다발적으로 “안 돼”라고 소리라도 지르면 그때부터 난리가 난다. 큰 소리로 울면서 발버둥을 친다.

운전 중인 남편은 마음이 급하고, 남편 옆의 나는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아들 옆자리의 딸은 동생한테 한 대 얻어맞고 화가 나 같이 싸우고 있다. 마트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온 가족의 진이 다 빠진다.

장애인 주차구역이 왜 비어있냐고? 장애인도 주차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준’에 따라 그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법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못하는데 그 공간을 비장애인을 위한 주차구역으로 바꾸어야 할까?

◇장애인 주차구역 33만개, 이용 가능 수요의 절반

그런데 말이다. 아들의 장애 특성상 우리 가족에게 ‘주차 가능’ 스티커가 절실하다 해도 나는 우리에게도 스티커를 달라며 요구하진 못하겠다. 우리야 힘들어도 참으면 그만이다. 아들을 달래고 어르며 참기만 하면 얼마든지 주차를 하고 어디든 갈 수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반드시 그 공간이어야만 하는 이들이 있다. 그 공간은 비워놔야 한다. 텅 빈 것처럼 보여도 그래야 진짜로 그 공간이 필요한 누군가가 그곳에 차를 댈 수 있다. 그곳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위해 상시 비어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만나자마자 그의 팬이 돼버린 척수장애인이 있다. 얼마나 멋스럽고 유쾌한지 얘기를 나누자마자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는 20대에 해외여행을 갔다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는 중도장애를 입었다. 그는 평소 양팔로 자가운전을 해서 다닌다. 그런데 일을 보러 약속장소에 도착했다가 그냥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규모 이상인 건물에는 장애인 주차구역이 필수로 마련돼 있다. 전체 주차장의 2~4%를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지정하도록 법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 주차구역이 화물하역장으로 변해 있든지, 보행자 통로 역할을 하고 있든지, 불법주차 된 차로 인해 공간이 없든지 등의 경우다.

장애인 주차공간이 따로 없는 곳에서의 상황은 더하다. 그렇지 않아도 주차난에 몸살을 앓는 대한민국이다. 이중주차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다 해도 휠체어를 내릴 수 있게 운전석이 있는 차 왼쪽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휠체어가 없으면 내려서 이동을 할 수 없으니 차만 주차했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장애가 없는 우리에게 주차난은 단지 골치 아픈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장애인 주차구역은 먹고 사는 문제를 포함해 삶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생존에 관한 문제가 된다. 인간으로서 가야 할 곳이나 가고 싶은 곳에 마음 놓고 가는 건 기본적인 인권이 아니던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자. 공항마다 장애인 주차구역이 포화상태인 것은 유명한 얘기다.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 장기주차를 해놓고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해외에 나가서 수백만원씩 쓰고 오는 마당에 벌금 10만원이 대수냐 싶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대놓고 신고를 당하면 발끈해서 신고자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우리에겐 단지 짜증나는 문제지만 누군가에겐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에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현재 장애인 주차구역 이용 가능 스티커는 60만장 정도가 발급돼 있다. 하지만 전국의 장애인 주차구역은 33만개 정도로 필요한 주차공간의 반 정도에 머물고 있다. 장애인 주차구역을 더 늘려야 할까 아니면 있는 공간도 비장애인인 우리들이 차지해야 할까. 우리에게는 단지 ‘편리’에 관한 문제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살아가는 ‘생존’의 문제임을 사회 전체가 인지했으면 좋겠다.

류승연ㆍ작가 겸 칼럼니스트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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