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진 칼럼] 의혹의 외관(外觀)을 만든 책임

입력
2019.01.24 18:00
30면

손혜원 행보, 투기 의심할 모양새 형성

공직자라면 그런 외관도 만들지 않아야

빈약한 공직윤리 의식에 분명한 책임을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에 맞서는 손혜원 의원의 태도에서는 결기와 오기만 느껴진다. 나는 떳떳하니 해볼 테면 해보라, 끝까지 가 보자는 결사항전 자세다. 자신이 당명과 로고를 만든, 그래서 “분신과 같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는 배수의 진도 쳤다. 한솥밥 먹던 여당 의원이든, 야당 의원이든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털끝만큼 불리한 발언을 하면 즉각 응징도 불사하고 있다.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곳곳에 전선을 형성하며 비난 여론과 전쟁을 치르는 형국이다.

손 의원의 설명을 모아 보면 납득이 가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 여기에는 나전칠기 같은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목포 근대 건축물과 거리 보존에 대한 남다른 시각과 열정만 본다는 전제가 붙는다. 그런 가정을 세우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기다리는 대신 조카와 측근 등을 동원해 목포 구도심을 재생하려는 손 의원의 행보에서 스스로에게 짐지운 사명감마저 읽힌다. 지인들에게 대놓고 동참을 권하고, 방송과 SNS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목포 구도심의 가능성과 문화적 가치를 설파한 것 등은 “누가 투기를 그렇게 하냐”는 반론을 수긍케 하는 정황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것을 선의로 읽을지, 투기로 볼지 시선이 나뉘기 때문이다. 그의 애정과 열정에 무게를 둔다면 선의로 해석할 수 있다. 부동산 값이 31% 뛰었다지만 실현 이익은 아직 없다. 부동산 투기를 염두에 두었다면 강남 아파트 투자가 더 손쉬웠을 거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타인 명의를 동원한 것은 전형적인 차명 투기 모습을 빼닮았다. 더구나 손 의원은 법률 제개정과 미공개 정보 접근이 가능한 국회의원이다. 의정 활동을 하며 목포 구도심의 가치를 누누이 강조했다. 투기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외관(外觀)이 형성된 것이다.

손 의원의 행위가 선의인지, 투기인지, 국회의원 지위를 이용했는지 등은 검찰에서 가려질 일이다. 다만 사실적 흐름 하나는 분명하다. 가족, 측근 명의로 목포 구도심 부동산을 매입했고, 그 과정에 국회에서 목포 근대문화재 보존의 중요성과 예산 지원 등을 거듭 강조했으며, 결국 근대문화역사공간과 등록문화재 지정이 이뤄져 자신이 매입한 부동산의 가치가 올랐다는 점이다. 그것이 전 재산과 인생을 건 열정의 결실인지, 내심 의도한 결과인지는 정황과 증거로 검찰이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열흘간 손 의원이 보여 준 공직자로서의 태도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무엇보다 공직 윤리에 대한 인식 부재가 거슬린다. 공직자윤리법의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숙지하지 못했을 수는 있다. 소유 기업 주식을 백지신탁한 마당에 그것도 몰랐냐고 트집잡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공직 윤리가 꼭 법 규정을 알아야만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사회의 관습과 도덕, 상식에 기반해 자연스럽게 터득해서 익힌 규범, 그것이 일반 시민이 알고 있고 지키고 있는 윤리다. 그럼에도 손 의원에게서 목포 구도심 보존을 위한 국민 세금 투입이 결정됐을 때, 또 의혹이 불거졌을 때 자신의 대량 자산 매입이 어떻게 비칠지 돌아보며 고민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손 의원은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나는 떳떳하다’는 결백함의 발로일 것이다. 언론의 의혹 제기에는 왜곡보도, 가짜뉴스 프레임과 피해자 모드로 맞섰다. 하지만 공직자라면 선의 여부와 상관없이 투기 의혹의 외관을 형성한데 대해서조차 무거운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공직자에 대한 과도한 요구라고 할 수도 있으나 공직자라면 숙명으로 감내해야 하는 태도다. 선수 선발 논란에 휩싸인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에게 확실한 근거도 없이 거세게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것도 싫다면 임기 종료를 기다릴 게 아니라 즉시 의원 배지를 떼고 민간 문화 사업자로 돌아가는 게 낫다. 이런 상태에서 1년여 의정 활동을 이어 가 봐야 공직 수행에 대한 신뢰가 생길리 만무할 테니 말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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