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은밀히 퍼진 동성 성폭력… 사회적 시선에 ‘쉬쉬’

입력
2019.01.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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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6.5% “동성 선수에 성폭력당해”… 이성 선수 성폭력보다 빈번 

 女지도자 女선수 성추행 실형도… 장윤창 교수 “범죄라는 인식 희박”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에 앞서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에 앞서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포츠계에서 성폭력은 남녀 사이뿐만 아니라 동성 간에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장윤창 경기대 체육학과 교수와 이금희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쓴 2017년 논문 ‘스포츠 성폭력 예방 및 대처의 인식개선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239명의 운동선수 중 동성 선수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선수가 6.5%를 차지했다. 반면 이성 선수에게 성폭력을 당한 선수는 0.4%에 불과해 동성 선수간 성폭력이 더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유형은 신체부위에 대한 성적비유, 신체 추행, 신체를 만지도록 한 강요 순이었다.

배구 선수 출신인 장윤창 교수는 21일 통화에서 “선후배 간 위계 질서가 강화되다 보니 폭력이 발생하고, 성추행으로도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성 간의 강간 등 성폭력은 큰 죄악이므로 강하게 처벌해 영구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면서 “동성간 성추행은 범죄라는 인식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처벌과 교육 등 ‘투트랙’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포츠계에선 피해자들이 동성 간 성추행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 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장 교수는 “약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다 보니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논문 속 현역 선수의 심층 면담 사례에는 ‘남자선배가 술 먹고 와서 여자 만날 시간도 없고 외박할 수도 없으니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남자)는 폭로도 있고 ‘선배가 후배에게 특정부위를 만져달라는데 정말 싫다. 어느 종목이든 여자선수들도 이런 일이 종종 있다고 들었다’(여자) 등의 진술이 담겨있다.

기존에 수면 위로 드러난 동성간 성폭력 사례도 수 차례다. 2017년 경기 지역의 모 중학교에선 1학년 축구부 남학생 3명이 동성 동급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합숙소에서 취침 시간 중에 동급생들이 팔을 붙잡고 강제로 성기를 만진 사건이었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남성 선수 A씨는 선배 선수로부터 합숙소 내에서 자신의 성욕을 해소해달라는 요구를 받았고, 타 종목 남성 선수 B씨는 지도자로부터 수 차례 성기와 관련된 언어 성폭력을 당했다.

여성 지도자가 여성 선수를 성추행 한 혐의로 실형을 받은 적도 있다. 2015년 대전 지역 여성 농구부 코치인 C씨는 숙소에 누워있던 초등학생 여성 제자를 상습 성추행 해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해당 코치는 자체 훈련에서 졌다는 이유로 옷을 벗은 상태로 체육관을 뛰도록 강요한 혐의까지 있었다.

허현미 경인여대 교수의 2011년 연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가 있는 남성 선수의 52%가 동료 남성선수에 의해 피해를 당했다. 남성 지도자에 의한 성폭력까지 더하면 남성 선수의 성폭력 피해의 87%가 동성에 의해 일어났다. 이는 여성 선수의 83%가 이성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다는 조사 결과와는 대조적이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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