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학 칼럼] 민심에 호소하는 정치

입력
2019.01.21 18:00
수정
2019.01.21 18:34
30면

국민과의 소통에 매달리는 촛불정부

SNS 소통 강화, 포퓰리즘 흐를 위험

‘촛불 제도화’ 야당ㆍ언론 협력 필수

#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이 핵심인 검찰 개혁은 촛불의 최우선 명령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1년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차기 민주정부의 첫 개혁 과제는 검찰 개혁”이라고 했다. 하지만 집권 3년 차를 맞도록 진전이 없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SNS에 도움을 청했다. “현재 국회 의석 구조를 생각할 때 행정부와 여당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 문 대통령은 청와대 홍보수석 명칭을 국민소통수석으로 바꾸는 등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 왔다. 정부 13개 부처에 디지털소통팀을 꾸렸고 SNS 홍보예산도 크게 늘렸다. 문 대통령은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전문성 있는 홍보ㆍ소통 창구를 마련하라”고 했고,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선 유튜브 홍보를 강조했다. 2기 비서진에겐 “전방위적으로 소통을 강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요즘 각 부처에선 SNS 소통 강화 방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검찰 개혁이 지지부진한 건 법조당(法曹黨)이라 불릴 정도로 판ㆍ검사 출신이 많은 자유한국당의 결사 반대 탓이다. 실제 김진태, 곽상도 등 검사 출신 의원들이 반대 주역이다. 재벌개혁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유치원3법 같은 민생법안도 한국당 벽에 가로막혔다. 합리적 견제는 내팽개친 지 오래. ‘반대를 위한 반대’요, 기득권층 옹호에만 혈안이다.

이런 한국당을 국정 동반자로 예우하라고? ‘야당에 밀려선 안 된다’ ‘국민 뜻을 따르겠다’며 한국당을 무시하는 배경이다. 제도 개혁은 국회 입법을 통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괴물 탓에 여소야대 정부로선 설득과 타협이 더욱 절실해졌다. 국회 의석구조를 핑계 삼기 전에, 거대 야당인 한국당과 타협하고 소수 야당을 설득하는 게 먼저다. 112석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과 무소속만 규합해도 60%가 넘는다. 못할 게 없다.

맹목적 반대는 언론도 한국당 못지않다. 정파성에 매몰돼 경제ㆍ사회 뉴스까지 정치 논리로 재단한다. 자동화 무인화 등 산업구조의 변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세계적 추세인데도, 마치 소득주도성장 탓에 한국경제만 그런 것처럼 왜곡한다. 좋은 경제지표는 애써 외면하고 나쁜 지표에만 주목한다.

이런 기레기 언론과 적극 소통하라고? 차라리 시민들이 SNS에서 자유롭게 형성하는 공적 담론을 통해 ‘경제 실패 프레임’에 맞서는 게 낫다. SNS 채널과 예산을 늘리는 이유다. 하지만 SNS 담론은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수만 명 독자를 확보한 팟캐스트나 유튜브도 있지만, 저널리즘적 취재를 통해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으로 보긴 힘들다. 대부분 뉴스 비평 수준이다. 가짜 정보에 기반한 확증 편향과 논리적 오류, 황당한 음모론이 넘쳐난다. 마녀사냥을 통해 시민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고 반대 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확장시킨다. 감정이 앞선 시민들의 파편화한 담론으로 훈련받은 기자들이 ‘사실’(정파에 유리한 것만 발굴하지만)에 근거해 만든 프레임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비명이다. 문 대통령도 ‘시민과 동행하는 정치’를 추구해 왔다. 두 사람은 제도권 정당과 언론 기반 없이, 사실상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의회와 언론이 깨어 있는 시민을 배반하는 시대에, 기득권 의회와 언론을 존중하고픈 마음이 생길 리 없다.

노무현은 친구 문재인을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 차례 식사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공익 대신 자본을 택한 언론이 싫었을 게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원칙주의자가 아니라 유연한 협상가가 돼야 한다. 정치적 의도가 뻔하니 무시하겠다는 태도로는 촛불의 꿈을 이룰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종지부를 찍은 건 국회였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규명한 건 기레기 언론이었다. 야당과 언론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 소통 노력이 민심을 얻는 길이기도 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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