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남의 삶을 사는 2류들의 사회

입력
2019.01.19 04:40
27면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는 학벌이라는 대외용 간판을 위해 자녀 본인 뿐만 아니라, 부모, 조부모까지 모든 것을 다 던져 넣는 세태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극중에서 모두가 남이 선망한다고 믿는 길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세태는, 비록 다소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자신이 아닌 남의 삶을 사는 2류들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극중 영재는 자신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특정 의대에 합격하자마자 등록을 포기하고 집을 나가는 방식으로 부모에게 저항한다. 자신에게 강요된 부모의 삶을 거부하고,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격렬한 저항.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꿈꾸어 본 모습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격렬한 저항보다는 대학에 와서도 진로를 못찾고 절망하는 등 소극적인 우회와 방황이 훨씬 흔한 경우다.

남의 삶을 사는 2류들의 모습은 진학에서만 찾을 수 있는게 아니다. 해외여행이 귀했던 시대에 앞다투어 외국으로 몰려가 국제교류를 했다는 자랑거리로 활용했던, 단체 해외연수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지의 관련 기관 방문 등은 양념에 불과하고, 주로 관광지를 ‘눈팅’하는 데 그치는 해외연수는 30,40년 전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 2018년 해외여행을 떠난 한국인은 무려 2,400만명이다. 전 국민의 절반이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드는 이 시절에, 굳이 일정을 맞추고 혈세를 들여가며 지방의회 의원 전원이 단체유람을 떠나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팀워크과 유대는 꼭 바다를 건너야 만들어지는가. 꼭 국제교류가 필요하다면 충분한 사전 조율을 통해 실질적인 협력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의 수립과 수행을 위해 필요한 인원만 해당국을 방문하면 될 일이다. 단체로 우루루 보여 주기식 여행을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들이 바로 2류다.

스티브 잡스는 남의 삶을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걸어간 길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타래처럼 잘 엮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신화를 이뤄 냈다. 그는 이민자 자녀로 주류는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관점을 관철할 수 있는 고집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결국 IT세계의 중심축이 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대흥행을 기록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다루는 프레디 머큐리 역시 그러하다. ‘파로크 불사라’라는 본명을 가지고 영국령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보내져 외로운 유학생활을 해야 했던 그.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한 명의 선생님 덕분에 음악을 하면 행복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전음악과 전통적 록음악을 두루 아우르면서도 누구나 들으면 흥분이 되는 음악을 그는 탄생시켰다. 수십 만 관객을 지배하는 카리스마와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 역시 남의 삶을 살지 않는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1류의 특질이다.

우리나라의 수준은 여전히 다른 나라와 주변 사람들을 곁눈질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는 의미에서 2류다. 인프라와 겉껍데기는 이미 1류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추격자로서의 아이덴티티는 더 이상 추격할 나라가 많지 않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제 선도자로서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거기에 필요한건 바로 용기다. 도전이다. 선도자의 특질은 충분히 주변을 둘러보되, 자신의 길을 찾았을 때는 주저 없이 다 던지는 용기다.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이 그래왔듯이. 미세먼지와 추위로 움츠러든 우리의 일상에 용기라는 불을 지펴보자. 자신의 열정을 따라 좌고우면 하지 않고 매진할 때 겪게 되는 실패와 주변의 조롱은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신호등이다. 나는 강단에서 그런 도전적인 인재를 기르고 싶다. 남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사는 인재를.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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