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 기준까지 깜깜이... 속터지는 임용고시

입력
2019.01.18 04:40
수정
2019.01.18 09:5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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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한 독서실에서 교사 지망생이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한 독서실에서 교사 지망생이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채점 해보고 어느 정도 안심했다가 불합격 통보를 받고 깜짝 놀랐어요. 더 답답한 건 뭘 잘 못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정답은커녕 채점 기준까지 모조리 비공개니까요.”

중ㆍ고등학교 교사 지망생 오모(24)씨는 지난 2일 2019학년도 중등교사임용시험 1차 시험 결과를 확인한 뒤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불합격’ 자체에도 좌절했지만, 예상했던 점수와 받은 점수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오씨는 “익히 들어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주변에 물어보니 100점 만점에 가채점과 실제 점수 차이가 적게는 7, 8점에서 많게는 20점까지 나더라”고 말했다.

교사임용시험의 ‘깜깜이 채점’을 두고 예비 교사들의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17일 임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 온라인 게시판을 보면 ‘가채점과 실제 점수의 차이가 너무 크다’며 채점 결과 재검토를 요청하는 항의성 글이 50여건 가량 올라 있다. 평가원이 좀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해달라는 내용이다.

중고등학교 교사 임용 시험은 전국 17개 시ㆍ도 교육청의 위탁을 받은 평가원 주관 아래 치러진다. 객관식으로 출제되던 이 시험은 2013학년도부터 기입형, 서술형, 논술형으로 바뀌었다. 기입형은 간단한 단어나 문구로, 서술형은 2~3줄 정도의 문장으로, 논술형은 교육학 등에 기반한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답하도록 했다. 변별력을 높이려고 기존 객관식이 지나치게 지엽적인 문제를 내놓자 대안으로 제시된 방식이다.

문제는 채점과 관련해서 공개되는 정보는 수험생 본인 점수, 합격 여부, 커트라인 정도라는 점이다. 정답이나 채점 기준, 평균점수나 과락 인원 같은 정보도 공개되지 않는다. 평가원은 “행정고시 같은 다른 시험도 답안을 공개하지 않으니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험생들 생각은 다르다. 행시 등 다른 시험은 논술형이 대부분이지만, 임용고시는 간단한 단어나 문구, 문장으로 답하게 하는 기입형과 서술형이 전체 문제의 7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기입형과 서술형은 비교적 똑 떨어지는 답을 요구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출제자가 문제를 낼 때 의도한 특정 키워드가 답안에 얼마나 포함됐는지를 따지는 가감식 채점 방식이다. 한 수험생은 “논술형은 그렇다 해도, 기입형과 서술형 문제는 문제가 요구하는 답이 비교적 명백하기 때문에 다른 고시와 동일하게 비교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의 한 임용고시학원으로 수험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량진의 한 임용고시학원으로 수험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불황 등이 겹쳐 중등교원 임용시험 경쟁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2019학년도 임용시험 경쟁률은 1만215명의 수험생이 몰린 서울이 12.5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556명이 몰린 대구는 13.4대 1이었다. 대구의 국어 과목 경쟁률은 43.75대 1까지 치솟았다.

경쟁은 치열한데 정보는 없으니 공교육의 최전선에 서게 될 예비 교사들이 몰려가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사설학원가다. 임용고시만 전문으로 다루는 인기강사들은 “교사가 된 제자들을 통해 최신 시험 정보를 입수했다”는 방식으로 이들을 홀린다. 경쟁률이 30대 1을 넘나드는 영어 교사임용에 3년째 도전한 주모(25)씨는 “0.01점으로 당락이 갈리는 상황인데 내 답의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으니 강사의 노하우에 기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형편이 여의치 않는 이들은 이마저 ‘그림의 떡’이다. 지난해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24)씨는 “인터넷 강의만 들었는데도 과목당 수강료가 100만원 대였다”면서 “수강료 부담을 줄이려고 3,4명씩 돈을 모으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용시험 출제위원 경험이 있는 한 사립대 교수는 익명을 전제로 “수험생들의 불만이 이렇게 높은 것은 평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의미”라면서 “논술형이야 어렵다 해도 기입형이나 서술형 답안에 대해서만이라도 구체적 채점 기준 등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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