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생 선생님으로 돌아온 땅끝마을 소녀 “후배들에 돌려주고파”

입력
2019.01.18 04:40
27면
구독

 삼성 드림클래스 겨울캠프 

 읍ㆍ면 도서지역 중학생 1500여명 

 대학생 교사들과 합숙하며 배워 

 “고민 털어 놓고 공부도 자신감" 

15일 드림클래스 겨울방학캠프가 열리고 있는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대학생 이솔씨가 2학년 9반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15일 드림클래스 겨울방학캠프가 열리고 있는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대학생 이솔씨가 2학년 9반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선생님, 여기는 왜 분자랑 분모가 이렇게 변했어요?” “선생님, 이 문제도 풀어주세요!”

15일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제1공학관. 교실 한 가운데 서 있는 대학생 이솔(21)씨 주변으로 전남 사투리가 잔뜩 묻어 나오는 9명 아이들 목소리가 재잘재잘 울려 퍼졌다. 아무 때라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질문하고 문제풀이를 하는 진지한 순간에도 이런 저런 소리가 교실 한 가득. 웃고 떠들고, 장난을 걸고 대꾸하고, 쉬는 시간에는 난데 없이 전 수업 보충 설명이 오가는 그 곳에선 침묵이 끼어들 틈새라곤 도대체 보이지 않았다.

15일 드림클래스 겨울방학캠프가 열리고 있는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대학생 이솔씨가 2학년 9반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15일 드림클래스 겨울방학캠프가 열리고 있는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대학생 이솔씨가 2학년 9반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곳은 전남과 강원지역 학생 300여명이 대학생 교사 100여명에게 3주간 수학과 영어 과목을 배우는 ‘드림클래스 겨울방학캠프’ 현장. 드림클래스는 삼성재단이 2012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중학생 방과후 학습 지원 사회공헌 활동으로, 방학 동안에는 평소 교육 기회가 닿기 어려운 읍ㆍ면ㆍ도서 지역 학생들을 위해 합숙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외 연세대 송도캠퍼스,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등 총 5개 학교에서 중학생 1,500여명이 합숙 중이다.

수 많은 사회공헌 학습 캠프가 있지만, 드림클래스는 유독 아이들 만족도가 높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대학생 강사들과의 유대 관계를 으뜸이라고 자랑하는 아이들이 많다. 10명으로 이뤄진 한 반에 선생님이 3명이나 배치되는데, 교실에서는 물론 기숙사에서도 같은 층에 섞여 지내면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는 차마 꺼낼 수 없는 고민’까지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이로 지낸다고 한다. 살가운 언니, 형, 오빠, 누나가 열심히 설명해주니 배우는 아이들 학업 능률이야 당연히 쑥쑥 오를 수밖에. 순천향림중에서 온 양서경(15)양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랑 안 친해서 아무도 질문이나 발표를 안 하려고 했었는데, 여기서는 선생님이랑 말이 통해서 질문하거나 대답하기가 편하다”라고 웃었다. 해남제일중 김미소(15)양 역시 “학교 수업은 진도만 나가면 끝인데, 여기서는 모르는 걸 일일이 짚어줘서 이해가 잘 된다”고 말했다.

15일 드림클래스 겨울방학캠프가 열리고 있는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드림클래스 출신 대학생 이솔씨가 이번에 학생으로 참가한 중학교 후배 황서현 양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15일 드림클래스 겨울방학캠프가 열리고 있는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드림클래스 출신 대학생 이솔씨가 이번에 학생으로 참가한 중학교 후배 황서현 양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만족도가 높으니 학생으로 참가했던 청소년이 대학생 강사로 돌아오는 경우도 여럿이다. 2학년 9반에서 수학을 담당하고 있는 이솔씨가 딱 그 경우. 2012년 당시 학습지 교사도 들어오기 꺼려하는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 살던 이씨는 드림클래스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에는 아무래도 혼자 공부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 혼자 공부하는 법을 알게 됐다”면서 “진로도 막연히 의사나 교사만 꿈꾸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세상에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원광대 한의학과에 진학했고, “내가 받은 걸 다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며 여름에 이어 또 다시 강사로 참여했다.

물론 이씨가 다시 찾은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다. 그의 중학교 후배 황서현(14)양이 슬쩍 끼어들었다. 황양은 “유치원 때부터 매일 똑같은 친구들만 보다가 다양한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됐다”면서 “이제 3학년에 올라가는데, 쌤(선생님) 덕분에 앞으로는 수학 시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씨는 “드림클래스는 학생들뿐 아니라 강사들도 서로 부딪히며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특히 학생들의 경우 좁은 지역에서 살아온 친구들이다 보니 세상이 넓고 다양한 길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새로운 인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는 조언. 황양이 다시 불쑥 끼어들었다. “저도 언니처럼 한의예과에 가고 싶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돕는 일이 즐겁다는 황양은 실제 하루 전 열렸던 전공박람회에서 한의예과에 유독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