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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공자의 유학사상을 확대 발전시켜 동양의 주류철학을 확립한 성인에 버금가는 학자였다. 그래서 맹자를 ‘아성(亞聖)’ 즉 성인과 차이 없다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공자와 맹자의 학문을 합하여 ‘공맹철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떤 경우 맹자의 주장을 읽다보면 마음이 확 트이고 통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우주처럼 넓은 곳에 살면서 정당하게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천하의 대도(大道)를 실천한다. 뜻을 얻으면 백성들에게 혜택을 끼쳐주지만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대도를 행하면 된다. 부귀에도 방탕하지 않고 빈천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으며, 아무리 큰 위력이나 무력에도 굽히지 않는다면 대장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호탕하고 유쾌한 인생의 삶인가.

맹자의 ‘대장부론’은 나약한 선비들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는 참으로 힘찬 글임에 분명하다. 본래의 뜻이야 같으나 표현을 달리한 공자의 ‘필부론’ 또한 가슴이 뛰게 해주는 글임에 차이가 없다. “3만7,500명의 군대 지휘관이야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가 없다”라고 말하여 ‘뜻(의지)을 빼앗지 못한다(不可奪志)’에서 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 것이고 뜻을 굽히게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통해 부귀ㆍ빈천ㆍ위무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고귀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 주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렇게 인간의 의지는 강하고 굳센 것이다. 공맹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런 강한 인간의 의지는 얼마나 나약하고 비굴하며 아첨과 아부에서 벗어날 수 없이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렸는가. 한 몸의 부귀를 누리기 위해, 빈천에서 벗어나려는 욕심 때문에 위협과 무서움에 벗어나려고 마음을 팔고 뜻을 굽혀 얼마나 참담하고 비굴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일인가. 나라는 망해도 내 개인의 부귀와 안일은 잃을 수 없다면서 매국노의 길을 걸었던 망국의 시절, 나라 없는 서러움일랑 나와 무슨 상관이냐면서 민족을 팔고 자기의 뜻을 팔아 친일파의 대열에 끼어 일본을 돕던 그런 무리를 3ㆍ1혁명 100주년을 맞으면서 더욱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

대장부의 기개를 통째로 버리고 독재자들의 주구가 되어 국가와 국민을 괴롭히며 아부하고 아첨하던 그들을 또 어떻게 잊겠는가.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의 그 수많은 권력자의 주구들, 그들은 부귀에 마음을 빼앗겼고 빈천에 마음을 옮겼으며 위무에 철저히 굴복하고 말았던 사람들이다. ‘목민심서’를 읽다보면 깜작 놀라게 되는 한 대목이 있는데 인간이 얼마나 사악하고 비굴한 존재인가를 발견하면서 맹자의 ‘대장부론’, 공자의 ‘필부론’을 거론하고 있다. 다산은 말했다. “남방 고을에서는 감사(監司) 의 지방 순찰이 있을 때마다 살찐 소 한 마리를 예비하여 안채에다 매어 놓고 깨죽으로 달포를 기르니, 그 소는 기름지고 연하여 보통 것과는 달라서 감사는 크게 칭찬하고 고과평가에서 최고의 성적을 매겼다”(빈객조항)라고 말하여 지방의 목민관이 자신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는 관찰사에게 아부하고 아첨하는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다산은 또 중국 진(晉)나라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임금이 언젠가 고관의 집에 행차했는데, 살찐 돼지가 매우 맛이 있어 임금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사람의 젖을 돼지에게 먹였다’라고 하였으니 깨죽으로써 소를 사육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런 기막힌 이야기를 통해 부귀를 위해 인간은 얼마나 아첨하고 아부하며 자신의 뜻과 의지를 빼앗겨 비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그림처럼 설명해 주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요, 우주의 주인공인 인간,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맹자는 분명히 말했다. “측은한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요,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공손추장)라고 말하여 인간이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설파하였다. 세상은 분명히 달라져 버렸다. 지금이야 약자들의 불쌍한 모습에 측은한 마음을 지니거나 잘못한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양보해야 할 일에 사양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 옳은 일만 하는 사람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고 높은 지위에도 오를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할 때에만 만인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되고, 모두가 우러러 보는 고관대작이 될 수 있다면 인간의 가치가 무너져버린 세상이 아닌가.

소에게 깨죽을 먹인 쇠고기로 상관을 대접하고 돼지에게 사람의 젖을 먹여 기른 저육으로 인사권자를 대접하여야 자신의 뜻을 이루는 세상은 이제 지나간 세월이 아닌가. 행여라도 그런 찌꺼기가 지금의 세상에 남아 있다면 말끔히 씻어내는 일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오늘의 일이다. 우주의 힘에라도 빼앗기지 않는 필부의 뜻을 지닌 사람들이 고관대작으로 발탁되고 아무리 가난하고 천해도 뜻을 바꾸지 않는 그런 사람, 어떤 위력에도 굽힐 줄 모르는 그런 대장부들이 등용되어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새해의 소망으로 말해보는 필부의 소박한 마음이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ㆍ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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