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규제 개혁은 만능인가

입력
2019.01.16 18:00
수정
2019.01.18 16:4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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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바뀌어도 암울한 경제 전망 이어져

성장 위해 규제 풀라는 목소리 높지만

규제 개혁 풍조의 공과 실 잘 따져봐야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우울한 경제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취업자 증가폭은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폐업 자영업자가 100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실적의 동시 악화로 대한민국 간판기업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었다.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다는 미국이나 올림픽을 앞두고 일손 부족 사태가 몇 년째 이어지는 일본 사정만 듣다 보면 우리 처지가 딱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나라 망치고 있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질 만도 하다.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어렵다는데도 정책 바꾸지 않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들이대는 기자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는 건 틀림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이나 일본처럼 순풍을 맞고 있는 건 아니다.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유류세 인상을 단행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생계 위협이라며 들고 일어난 노란조끼 시위대의 거센 항의에 풍전등화 지경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 취임한 이 ‘젊은 피’는 최근 조금 올랐다는 지지율이 28% 수준이다.

일자리가 초미의 관심사니 어느 컨설턴트가 자신의 칼럼에서 밝힌 지난해 3분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실업률 수치를 인용해 보고 싶다. 가장 실업률이 높은 나라는 그리스로 18.9%였다. 이어 스페인이 15.0%, 이탈리아 10.3%, 프랑스 9.0%, 핀란드 7.4%, 칠레 6.9%, 스웨덴ㆍ벨기에 6.5%, 캐나다 5.9%, 아일랜드 5.6%였다. 한국은 어디쯤에서 패스했느냐고 묻고 싶겠지만 4%다. 그 기간 OECD 평균(5.3%)보다 낮다. 한국보다 사정이 좋은 나라는 30여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 네덜란드, 독일, 일본이 전부다.

그러나 고통은 나누면 절반이라는 것은 단지 믿음일 뿐 옆집이 같이 굶어준다고 내 주린 배가 쓰리지 않을 리 없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가 입만 열면 “경제” “경제” 하더니 새해 들어 대통령 신년사와 연두 기자회견에도 경제에 대한 관심이 압도했다. 그저께 청와대 기업인 간담회도 그 일환이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일자리도 늘어야 하는 건 마땅하다. 임기가 3분의 1 지난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충분히 전력투구해볼 만한 과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유행가 가사처럼 되뇌는 규제 개혁-투자 확대-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이 지나친 장밋빛 단순 논리일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재계는 일관되게 사업하기 편하도록 해야 투자도 성장도 가능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점점 이에 동조해 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규제가 개혁되면 일자리가 늘어날까.

자타가 인정하는 규제 개혁 지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대못 뽑겠다”고 나선 그 정부 말기 국무총리실에서 발주해 만든 ‘이명박 정부 규제 개혁의 성과와 과제’라는 보고서가 있다. 그중 지수를 통해 규제 개혁의 성과를 평가한 내용이 있다. 흔히 ’사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로 번역하는 세계은행의 ‘Doing Business Index’는 2007년 30위에서 2011년 8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적극적인 규제 개혁으로 기업 활동이 분명 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세계경제포럼의 국제경쟁력지수는 11위에서 24위로 하락했다. 직전 노무현 정부 때 떨어졌던 고용률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줄었다. 청년 실업도, 여성 경제 참가도 더 나빠졌다.

혁신이 일자리를 늘린다는 보장도 없다. 공유경제는 가야 할 방향이지만 그것으로 고용이 확대되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스타트업에 지나친 기대를 건다거나 대기업은 한계에 부닥쳤으니 중소기업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주문은 듣기에만 그럴싸하다. 다른 답이 무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규제 개혁 만능주의가 사회 풍조가 될 때 우리가 과거처럼 또 어떤 비극들에 직면하지 않을까 두려울 따름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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