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두만강 국제철교 ③

입력
2019.01.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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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두만강에 가설한 세 번째 국제철교는 ‘북선선’(지금 함북선 일부) 중간쯤에 있는 훈융교(訓戎橋)다. 한반도 최북단 온성군 훈융과 연변조선족자치주 최남단 훈춘(琿春)을 연결한다. 한국 중국 러시아 국경이 교차하는 이 지역은 무역이 활발한 반면 충돌도 빈번했다. 예를 들면, 일제는 1920년 10월 마적단을 사주하여 훈춘에서 살상 약탈 방화 등을 자행케 하고, 이의 토벌을 구실로 한반도와 시베리아 주둔 일본군을 대거 침입시켜 한국독립군 등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일제는 또 1938년 8월 장고봉(張鼓峰) 영유를 둘러싸고 소련과 전투를 벌여 1,500여명이 살상당하는 참패를 맛봤다. 지금 훈춘 끝자락 방천(防川)에 가면 두만강과 모래언덕으로 어우러진 3국 국경의 기묘한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일본자본 훈춘철로고분유한공사(琿春鐵路股份有限公司)는 석탄채굴과 지역진흥을 명목으로 1935년 7월 훈춘에서 두만강변 수만(水灣)까지 13.1㎞를 개통하고 이어 11월 그 너머 훈융까지 1.7㎞를 연장했다(단선, 궤간 762㎜). 이로써 두만강에 세 번째 국제철교가 탄생했다. 동만주철도회사는 1939년 5∼11월 이 노선과 철교를 매수하여 표준궤로 개축했다(교량만 39만 3,000원 소요). 이 무렵 훈융교 상류 약 200m에 도로교도 건설되었다(길이 486.5m). 훈춘-훈융 철도가 ‘북선선’ 및 나진항과 연결되자 객화수송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1945년 8월 9일 새벽 소련군이 두만강하류 일대를 침공하여 이듬해 5월까지 주둔했다. 관동군은 소련군을 막기 위해 도로교를 파괴했는데 아직도 끊어진 몰골대로다. 소련군은 훈융교 트러스를 비롯하여 북한 중국 국경근처에서 1,500㎞ 이상 철도를 뜯어다 시베리아철도 등에 유용했다. 훈춘-훈융 철도는 1950년까지 군사용으로 사용되다가 1960년 북한과 중국이 합의하여 선로를 철거했다. 두 다리의 흉상(凶狀)은 국경의 기막힌 애사(哀史)를 증언한다.

중국은 1992년 3월 훈춘을 대외 개방도시로 지정하고 1년 반 만에 도문에서 훈춘까지 철도를 개통했다. 나아가 훈춘에서 시베리아철도 크라스키노역까지 40㎞를 연장했는데, 중국(표준궤 1,435㎜)과 러시아(광궤 1,524㎜) 겸용을 위해 각각 2선씩 4선 궤도를 깔았다. 크라스키노는 발해의 동해거점 염주(鹽州)로서 동북아역사재단이 10년 이상 그 성터를 발굴하고 있다. 중국은 1996년 말 철도가 진입한 자르비노항을 70년간 조차하고 2000년 2월부터 화물수송을 시작했다.

중국은 이미 고속도로가 깔린 장춘-훈춘에 2015년 9월 고속철도를 개통했다. 북한 나선경제특구(羅先經濟特區)는 바로 훈춘의 코앞인데, 중국은 벌써 이곳까지 도로를 건설하고 곧 고속철도를 놓을 기세다. 훈춘은 수려한 호텔과 주택이 즐비하고 한ㆍ중ㆍ러 글씨 간판이 현란하다. 반면에 훈융은 아주 칙칙하고 쓸쓸하다. 벼르다 만난 함북선 열차는 시속 20㎞도 안 되어 일제 때보다 배 이상 느렸다. 북한과 중국은 2019년 1월 1일 두만강수상루트관광을 개시했다. 중국인이 얼어붙은 두만강을 도보로 왕래하며 당일치기로 나선경제특구를 구경한다.

북한과 소련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15㎞ 국경을 접하는데, 하류 끝에 1952년 양국 철도를 연결하는 ‘조소우의교(朝蘇友誼橋)’를 가설했다. 처음엔 목재였다가 1959년 철재로 개축했다. 북한-러시아 유일의 육로인데, 낮은 고도 때문에 큰 선박은 두만강을 출입할 수 없다. 육로가 막힌 중국은 훈춘-동해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철교개조를 요구하지만 북한과 러시아는 이해득실을 재며 응하지 않는다.

북한과 러시아는 2009년부터 나진-두만강-하산 구간을 표준궤 광궤 겸용 4선 궤도로 개축하고 2013년 준공식을 거행했다(54㎞). 러시아가 비용 70%를 부담했다. 이로써 한반도철도와 시베리아철도가 일부나마 동일궤간으로 이어졌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1991년에 천명한대로 두만강유역은 조만간 환동해에서 가장 각광받는 경제발전 세력경쟁 지역으로 부상할 것이다. 남북철도연결합동조사단은 2018년 12월 하순 두만강까지 노선을 실사했다.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민족의 애환이 서린 두만강일대가 동북아시아 공영의 결절지역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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