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아보기] ‘넓다’와 ‘밟다’의 발음

입력
2019.01.14 04:40
29면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받침의 발음이다. 특히 겹받침 발음을 많이 어려워하는데, 겹받침 발음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틀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세상은 넓다’에서 ‘넓다’는 [널따]로 발음해야 하는데 [넙따]로 잘못 발음하거나 ‘땅을 밟다’에서 ‘밟다’는 [밥ː따]로 발음해야 하는데, [발따]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똑같은 ‘ㄼ’ 받침인데도 ‘넓다’는 [널따]로 발음하고 ‘밟다’는 [밥ː따]로 발음하는 이유는 예외 규정 때문이다. 겹받침 ‘ㄼ’은 두 개의 자음 중 뒤의 자음인 ‘ㅂ’을 탈락시키고 앞선 자음인 ‘ㄹ’을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밟다’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앞선 자음인 ‘ㄹ’을 탈락시키고 뒤의 자음인 ‘ㅂ’을 발음한다. 이처럼 겹받침 ‘ㄼ’의 탈락 자음을 일률적으로 ‘ㅂ’으로 규정하지 않고 단어에 따라 예외 규정을 둔 것은 언중들이 ‘밟다’를 [밥ː따]로 발음하는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겹받침 발음에 예외 규정을 둔 경우는 이외에도 ‘넓죽하다’ 등이 있다. ‘넓다’는 겹받침 ‘ㄼ’ 중 뒤의 자음인 ‘ㅂ’을 탈락시켜 발음하지만 ‘넓죽하다’는 ‘밟다’처럼 앞선 자음인 ‘ㄹ’을 탈락시켜 [넙쭈카다]로 발음한다. ‘넓둥글다’와 ‘넓적하다’ 역시 앞선 자음인 ‘ㄹ’을 탈락시켜 [넙뚱글다], [넙쩌카다]로 발음한다.

발음 규칙을 정할 때 언중들의 실제 현실 발음을 고려해야겠지만 이처럼 똑같은 겹받침인데도 단어에 따라 발음을 다르게 규정함으로써 가뜩이나 복잡한 겹받침 발음을 더 어렵게 만들었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조차 겹받침 발음을 어려워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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