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파인더] 개성공단 재가동, ‘벌크캐시’ 문제 해결하면 가능하다고?

입력
2019.01.12 10:00
수정
2019.01.12 12:02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개성공단기업비대위 주최로 열린 개성공장 점검 위한 방북승인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개성공단기업비대위 주최로 열린 개성공장 점검 위한 방북승인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벌크 캐시(대량 현금ㆍbulk cash)가 유입되지 않는 방식으로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지 연구해봐야 할 것으로 본다.”

11일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특별위원회 초청 강연에서 나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이 한마디는 이날 종일 여러 해설을 낳으며 화제가 됐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조건 없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를 환영하며 “이로써 북한과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밝혔고, 이게 정부가 본격적으로 개성공단 재가동 준비 작업을 시작한다는 신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강 장관 발언으로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핵심 선행 과제가 대량 현금 차단인 것으로 인식될 여지가 커졌지만, 문제는 장애가 그뿐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성공단은 첫 제품을 출시한 2004년부터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로 가동 중단된 2016년까지 남북 간 제도 정비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했으나, 이후 북한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 대북 제재망이 촘촘해지면서 장벽이 크게 높아진 상태다. 정부가 ‘제재 틀 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을 준비하려면 수많은 선결 과제가 남았다는 뜻이다.

개성공단 사업 재개 시 위반 소지가 있는 대표적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로는 △대북 해외투자, 기술 이전, 경제협력을 차단하기 위해 북측과 합작사업(joint ventures)을 금지(이하 2375호) △직물ㆍ섬유 등 경공업 제품 수출 금지 △식품, 농산품, 기계류 등 주요 분야 수출 금지(2397호)가 꼽힌다. 이중 합작사업의 경우 개성공단이 ‘최초 남북 합작사업 성공사례’로 언급돼 온 데다 경협이라는 제재 목적에도 해당돼, 위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수출 금지 항목도 걸림돌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공단에는 섬유, 가죽ㆍ가방ㆍ신발, 화학, 기계금속, 전기전자 기업 등이 입주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개성공단은 주로 임가공 기업이 입주해 있는데 개성에서 제작공정만 거친 제품을 북한의 수출로 볼지는 논란점이다”며 “하지만 그외 기계류 대북 반입 등 제재로 인해 공단 시설 복구작업부터 바로 제재 문제에 걸린다”고 진단했다.

강 장관이 언급한 벌크 캐시는 오히려 개성공단이 운영 중이던 2013년 3월에 의결된 안보리 결의 2094호에 명시된 사항이다. 이 결의는 “회원국은 북한 불법 프로그램에 기여하는 모든 금융 거래 또는 서비스를 차단ㆍ동결한다”며 “벌크 캐시 이전도 금융 제재에 적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에는 북한 당국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달러화가 즉시 문제시되진 않았으나 현 제재 국면에서는 이 임금이 벌크 캐시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하며 개성행(行) 자금을 북측 정권 유지와 결부시킨 바 있어, 이 꼬인 매듭을 다시 풀 논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으로 유입된 돈의 70%가 당 서기실에 상납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근거자료를 밝히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현 제재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연일 개성공단 기대감을 띄우는 이유는 뭘까. 일단 북미 대화 재개를 앞두고 북측의 전향적 자세를 이끌어내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호응해 줄 필요가 있다는 계산이 섰던 것으로 보인다. 제재완화를 지금 예단할 순 없지만, 추후 협상 진전에 대비해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를 미리 내부 검토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앞서 1일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재 상황에서 개성공단도 그렇고, 금강산관광도 대북제재와 무관하게 보기 어렵다”며 현실 가능성은 낮춘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부 검토 단계에서 나아가 개성공단 관련 포괄적 제재예외 인정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합작사업 관련 2375호 결의에 “북한 주민의 민간 요구를 보호하기 위해 북중 수력발전, 북러 나진ㆍ하산 프로젝트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본떠서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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