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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법무부가 지난해 8월 22일 공개한 야키프 팔리의 여권 사진. EPA=연합뉴스

독일 나치 정권에 부역한 사실이 드러나 미국에서 추방됐던 95세 노인이 독일에서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 경비대원과 친위대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숨기고 1949년 미국으로 이주했던 야키프 팔리(Jakiw Palji)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알렌시의 요양원에서 9일 숨졌다고 AP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지난해 8월 나치 부역 사실이 드러나 미국에서 추방된 지 5개월 만이다.

팔리는 69년간 살았던 미국에서 쫓겨났지만 끝내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역사적 책임’을 거론하며 미국에서 추방된 팔리가 독일에 입국하도록 허용했으나, 독일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팔리를 기소하지 않았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해 8월 팔리 추방 당시 독일 일간지 빌트와 인터뷰에서 “역사적 책임이 끝나는 시점은 없다”며 독일이 팔리를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8월 20일 야키프 팔리가 뉴욕시 퀸즈보로에 있는 자택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팔리의 나치 부역 사실이 밝혀진 건 1993년이었다. 미국으로 건너올 당시 독일군에서 복무한 적 없다고 주장했던 팔리의 거짓말은 동료의 증언으로 들통났다. 캐나다 당국의 조사를 받은 팔리의 동료는 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소속으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복무했다고 밝혔고, 팔리는 자신을 찾아온 미국 검찰 수사관들에게 비자를 받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팔리가 일했던 트라브니키 수용소에서 1943년 11월 벌어진 학살로 수용자 6,000여명이 사망했다.

독일과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관계국들이 수용을 거부하면서 팔리는 94세가 될 때까지 미국에 머물 수 있었다. 뉴욕시 자택에 칩거하는 팔리의 집 앞에는 그를 비난하는 시위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미국 내 유대 사회는 정부가 팔리를 추방할 것을 집요하게 촉구했고, 미국 정부는 2018년에 독일 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서 팔리 규탄 시위를 이끌었던 랍비 제브 마이어 프리드먼은 10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팔리의 죽음에 대해 “악랄한 인간이 세상을 떠났고 이는 긍정적인 일이다”라고 밝혔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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