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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영업시작 한국 最古 식당
주인 세번 바뀌어도 맛은 한결같아
손기정 김두한 이시영 前부통령 등 단골
9일 점심 시간 이문설농탕 홀 전경. 왼쪽 액자에 ‘1세기의 전통 진미의 고향, 이문 설농탕’이라고 쓴 한자가 보인다. 배우한 기자

100년. 화려한 수식어나 의미 부여가 없어도 시간의 흐름 그 자체로 장엄하다. 100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3ㆍ1 운동이 일어났다. 이런 역사적 사건보다 15년 앞서 문을 연 음식점이 아직도 서울에서 시민들의 뱃속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다. 이문(里門)설농탕.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적으로 종로구 견지동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서민 음식인 설렁탕이 주 메뉴다. 1904년 가게를 처음 연 곳은 피맛골 근처 이문이라고 불리던 초소 옆이었다. YMCA 뒤편 야트막한 언덕을 이문고개라 불렀고 여기서 ‘이문’을 따왔다. 처음 상호는 이문옥이었다. 창업주 홍씨가 영업하다 일제 강점기 이문설농탕으로 상호가 바뀌었고 2대 주인 양씨가 공평동으로 옮겼다. 거기서 재개발로 건물이 헐린 2011년 8월까지 영업하다 현재 위치로 왔다. 공평동 한옥집은 2층으로 특색 있는 건물 디자인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뒤쪽에 1층짜리 한옥 한 채가 더 있었는데 거기도 식당으로 이용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1904년 영업 시작… 주인 2번 바뀌고 60대는 ‘어린 단골’

115년 사이에 주인이 세 번 바뀌었다. 창업주 홍씨, 두 번째 주인 양씨에 이어 1960년 현 전성근(74) 사장의 어머니인 고(故) 유원석씨가 인수했다. 전 사장은 1980년 가게를 이어받았다.

‘노포 중의 노포’ 이문설농탕을 지난 9일 방문했다. 오전 11시가 갓 지난 시간임에도홀 식탁 절반 이상이 손님들로 차 있었다. 3명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서 전 사장 아내인 전혜령(53)씨에게 신용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가게는 홀과 오른 편에 있는 방 4개로 이뤄져 있다. 손님이 가득 차면 100명 정도 된다.

식탁에는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담긴 은색 둥근 통 2개와 파통, 후추, 소금 등이 놓여있다. 중국인 관광객 2명이 뜨끈뜨끈하게 막 식탁에 오른 설렁탕을 먹음직스럽게 바라보고 있었 다. 어떻게 낮은 건물 사이 좁은 길로 주차장 펜스를 따라 70m를 더 걸어와야 도착할 수 있는 가게에 왔는지 물었다. 지촨(27)씨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맛집 앱을 보고 왔다”며 “’음식이 맛있다’ ‘훌륭하다’는 평가가 아주 많아서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과 대화하는 사이 그새 또 다른 외국인 커플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전혜령씨는 “가게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후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문설농탕은 매년 미쉐린 가이드에 뽑히는 단골 가게다.

손님의 상당수는 단골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온 신형준(41)씨도 22년째 단골이다. 신씨는“음식이 제 입에 맞으면서도 맛있다”며 친구들과 환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한 숟가락을 들었다.

회계사인 이석경(81)씨는 60년 가까운 단골이다. 20대 초반부터 오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설렁탕이 그냥 맛있다. 맛 없으면 가게에 오겠느냐”며 반문했다. “설렁탕 말고 김치와 깍두기도 매우 맛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이씨는 주인이 세 번 바뀌었다는 내력까지 꿰뚫고 있었다. 60대도 이 집에선 ‘어린 단골’로 통한다는 말을 이씨가 증명하고 있었다.

주방장이 설렁탕에 들어갈 양지와 머릿고기 등을 자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아흔까지 찾아와 먹은 교수, 몸 아프면 며느리가 포장해가

본격적인 점심 시간인 낮 12시가 가까워지자 손님들의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덩달아 종업원들의 손길은 분주해졌다. 홀 서빙 종업원들은 주방 앞에서 다급하게 “설렁탕 하나, 도가니 셋” “설렁탕 둘”이라고 외치며 손님의 주문 내용을 전달했다. 주방에서 고기를 써는 칼질 소리의 박자가 점점 빨라지고 육수통과 빈 그릇을 오가는 왕복운동의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손녀를 데리고 온 단골이 눈에 확 띄었다. 민서(9)양을 데리고 온 김종수(67)씨는 “직장 생활 할 때부터 왔으니 40년 정도 됐다”며 “손녀가 설렁탕을 좋아해 오늘 처음 손녀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손자의 손자가 온다’는 일제 시대부터 자자한 명성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전혜령씨는 “요즘 추워서 단골이 덜 왔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단골 손님이 많이 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오후 2시가 넘어서도 중절모를 쓴 중장년층, 백팩을 맨 20~30대 직장인, 혼자 온 사람 등 각양각색의 손님들이 계속 식탁 자리를 채웠다.

역사에 걸맞게 단골 중에는 역사 교과서에 실린 유명인들이 많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 생전에 만하(소 비장)를 먹으러 자주 가게에 들렀다. 모교인 양정고등학교 모임도 이문설농탕에서 가졌다. 남로당 거물 박헌영, 초대 부통령 이시영, 당대의 주먹 김두한 등이 단골이었다. 전 사장은 “두 번째 주인은 가게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상당한 인텔리였는데 이때 김두한씨가 단골이었다”고 기억했다. 전 사장 모친의 이화여전 스승인 국문학자 이희승 박사는 아흔 살에도 가게에 와서 음식을 먹었다. 전 사장은 “이 박사가 몸이 안 좋아 못 오면 며느리가 와서 포장해 갔다”고 알려줬다.

수육(왼쪽)과 설렁탕(오른쪽 아래), 도가니탕이 식탁에 차려진 모습. 배우한 기자
◇매년 미쉐린 가이드 선정에 외국인ㆍ젊은층 방문 증가

식사 메뉴는 간단하다. (특)설농탕, (특)도가니탕, (특)머리탕이 전부다. 수육, 도가니안주, 소머리안주, 혀밑(혀 아래 부분), 마나(소 비장) 등은 안주류이다. 다른 음식점에선 손질이 어려워 흔히 볼 수 없는 혀밑과 마나를 사용하는 게 특색 있다. 설렁탕의 맛을 더하기 위해 수증기를 이용해 빈 그릇을 뜨겁게 데워놓는다. 요즘 식당들은 하지 않는 정성이 가득한 방식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에 맞는 부위의 고기가 들어가고 국물을 집어넣으면 탕이 완성된다.

긴 역사를 이어온 변함없는 맛의 비결은 담백한 국물 맛이다. 맛을 변하지 않게 하려고 육수를 우릴 때 양질의 원재료를 쓴다. 양지ㆍ도가니ㆍ사골 등을 솥에 넣고 16~17시간을 끓인다. 미쉐린 가이드가 2017년 빕 구르망으로 선정할 당시 “큰 무쇠솥 안에서 사골을 17시간 고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남은 뽀얗고 맑은 국물 맛”이라고 평가했다. 고기 부위마다 삶아서 국물을 내는 방법도 다르다. 한결같은 맛을 내려는 꾸준한 노력이 비법인 셈이다.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는 건 기본이다.

역사라는 스토리와 보편적인 맛을 겸비한 이문설농탕은 스타 음식점이다.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이 선정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에 꼽혔다. 8개월간 역사ㆍ평판 조회를 거친 결과였다. 서울시는 2013년 미래 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설렁탕 전문식당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내외 유명 방송사들도 맛집 촬영을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다. 건국 후 서울시음식점 허가 1호점이라는 영예도 안고 있다.

검증된 맛과 충성스러운 단골을 보유했지만 고비가 없지는 않았다. 특히 굴곡진 현대사와 이문설농탕의 고비가 오버랩되는 게 인상 깊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다. 혼ㆍ분식 장려정책을 펼치면서 매주 수요일ㆍ토요일엔 오후 5시까지 모든 식당에서 밀가루 음식만 팔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국물에 사리만 넣어 팔았는데 손님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 일주일 중 이틀 치 장사를 망치고 손님들도 떨어져 나가면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치열했던 시절에는 최루탄의 고약하고 매캐한 냄새로 주 고객인 중장년층이 외부로 나오지 않으면서 많이 어려웠다고 한다. 서민 음식이어서 여파가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무서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성근(오른쪽) 사장과 아내 전혜령씨가 가게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다정하게 웃고 있다. 배우한 기자
◇아들이 가업 이어받기로 해 3대째 승계 ‘운명’

전씨 집안 사람들에게 이문설농탕의 명맥을 유지하는 건 운명처럼 각인돼 있다. 전 사장의 아들인 명우(26)씨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고 제가 외아들이어서 할머니 때부터 이어져온 명맥을 이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 왔다”고 고백했다. 10년 전 뇌경색이 온 아버지의 오른팔이 불편해 현재는 어머니가 가게 일의 대부분을 떠맡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마저 연로해지면 그때는 본인의 차례라고 여기는 것이다.

전 사장의 꿈은 소박했다. “계속 전씨 집안에서 가게를 이어가면 좋겠고, 혹시 상황이 변해 다른 주인이 나타나더라도 상관없다”며 “한국의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라는 전통과 오랫동안 변치 않는 그 맛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전 사장의 꿈은 서울 시민들의 꿈과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그의 소망이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배성재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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