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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1869년 스코틀랜드 북부의 작은 마을 컬두이. 아홉 가구 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세 사람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17세 소년 로더릭 맥레이. 그는 범행을 저지른 후 도망가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추리를 통해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범죄소설의 기본 문법이었다면, 이 소설은 범인을 밝히고 시작한다. 반전은 없다. 그러나 기존 범죄소설에는 보기 드문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빚어낸다.

컬두이와 인근 지역 주민의 진술 자료로 추리를 시작한다. 로더릭의 성장환경과 성향을 파악해 사건 발생 경로와 범행 동기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주변인 각각의 진술이 엇갈린다.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는 그를 “예의 바르고 친절한 소년”으로 봤고, 마을의 목사는 “늘 사악한 면모를 지닌 아이”로 여겼다. 로더릭의 학교 교사는 “그가 굉장히 똑똑했으며, 사교적이진 않지만 공손했다”고 밝혔다. 재판이 시작되며 검사와 변호사, 의사, 학자들도 로더릭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로더릭은 본성부터 악독한 악마일까, 벼랑 끝에 내몰린 가엾은 소년일까. 그의 진짜 모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결론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블러디 프로젝트: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
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ㆍ조영학 옮김
열린책들 발행·400쪽·1만3,800원

현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그레임 맥레이 버넷의 대표작이다. 소설은 영국에서만 20만부 이상 판매됐고, 20개국에서 출간됐다. 2016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미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올해 최고의 미스터리가 되기도 했다.

역사적 내용을 재구성한 듯 사실적인 전개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살인사건 이후 로더릭의 옥중 비망록, 부검보고서, 범죄 심리학자의 회고록, 재판 기록 등 문서의 기록들이 서술된다. 문체는 건조하지만 생생한 묘사와 섬뜩한 분위기, 인물의 다양한 관점들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19세기 스코틀랜드 소작농을 둘러싼 착취와 억압, 고지대 특유의 생활상, 당시 사법제도의 묘사는 사실감을 더한다. 가난한 소작농인 로더릭의 아버지는 퇴비로 이용할 해초를 수집하다가 “해초도 지주님의 재산”이라며 치안관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곤경에 처한다. 이후에도 부조리한 경제 착취에 시달리고 그나마 지켜온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가며 로더릭은 분노를 키워간다. 로더릭의 모습은 불편하기도, 안타깝게도 다가오며 독자들에게 복잡미묘한 감정을 안긴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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