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공영방송 KBS를 더 망치는 방법

입력
2019.01.0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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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동 KBS 본관 전경. KBS 제공
서울 여의도동 KBS 본관 전경. KBS 제공

TV수신료(수신료) 2,500원은 1981년 4월 책정됐다. 1980년대 초반만해도 2,500원은 무시할 수 없는 돈이었다. 1984년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조사 발표에 따르면 자장면의 전국 평균 가격은 565원이었다. 2,500원이면 자장면 네 그릇을 사먹고도 남을 돈이었던 셈이다.

한 가족이 외식할 수 있는 금액이어서였을까. 시청료(당시 명칭) 납부에 대한 저항감이 강했다. 집에 TV가 있는 걸 극구 숨기려는 집주인과 시청료 납부 징수원이 신경전을 펼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영향력이 막대했던 KBS의 불공정 보도는 저항감을 더욱 키웠다. 1986년 종교ㆍ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시청료 징수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1994년 10월부터 수신료를 지금처럼 전기료에 병과해 강제 징수하게 될 때쯤 징수율은 53%에 불과했다.

38년이 흐른 지금, 2,500원은 여전히 내놓기 억울한 돈 취급을 받는다. 자장면 한 그릇은커녕 커피 한 잔 사 마시기도 어정쩡한 금액이지만 2,500원에 대한 저항감은 역시나 강하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보면 수신료 안 내는 방법에 대한 글들이 상단을 차지한다. TV로부터 정보를 습득하고, 유흥까지 즐겼던 20세기와는 달리 KBS 의존도가 줄어든 시대적 변화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겠다. 예전처럼 많이 보지 않는데 굳이 한달 2,500원을 내야 하냐는 반감이다. 무엇보다 KBS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수신료를 ‘아까운 돈’으로 만들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4일 수신료를 강제 징수하지 못하도록 방송법 등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수신료 납부 거부와 강제 징수 거부를 통해 KBS의 편향성을 바로잡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권이 교체되면 KBS에 대한 정당 별 인식은 180도 바뀐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수신료를 전기료와 분리해 징수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한나라당은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다. 진보성향 시민단체를 위시해 범야권은 수신료 인상 반대뿐 아니라 강제 징수 거부 운동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반발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수신료 인상이 촛불운동을 부를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정치적 색깔이 달라도 일단 야당이 되면 KBS와 수신료를 향한 인식은 동일해진다. KBS가 공영방송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 친정부 보도에 여념이 없으니 수신료 인상을 막거나 징수 거부를 해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반면 모든 여당은 KBS 감싸기에 바쁘다. 정치권이 KBS를 공공재로 보기보다 정권 획득에 따른 전리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KBS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낙하산처럼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정부와 가까운 사람을 사장으로 선출한다. 청와대가 사장을 바로 임명하던 권위주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KBS가 공영임에도 국영이라는 인식이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KBS가 밉다고 수신료를 낮추거나 수신료를 내지 않으면 어찌 될까. KBS는 재난 방송 주관 기관이다. 천재지변이든 전쟁이든 국민이 위기에 놓였을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주요 사회 기관이다. 재난 방송뿐 아니다. 다종다양한 매체들이 영역을 넓혀가며 가짜뉴스를 남발할 때일수록 공영방송 KBS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재정이 부실한 KBS의 질적 하락은 국민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KBS의 지배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도록 특별다수제 등을 도입하는 등 이사회를 재편해야 한다. 야당들의 반복되는 수신료 거부 운동은 공영방송 KBS를 더 망치는 방법일 뿐이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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