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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근육질환 폼페병 임지나씨
몸을 움직이기 힘들지만
같은 병 앓는 2명과 서울 여행
세상과 만남을 책으로 내

“신기하고 희귀하다는 이유로 유리관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흰돌고래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두려워 방 안에서 자신을 숨기려 하는 폼페병 환우들의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5년 전 이름도 생소한 희귀근육질환 폼페병 진단을 받은 임지나(32)씨는 지난해 봄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우 2명과 함께 서울 곳곳을 여행했다. 그렇게 방문한 서울의 한 대형수족관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곳이었지만, 임씨와 환우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루게릭 병과 비슷한 근육질환 중 하나인 폼페병은 당분을 분해하는 효소가 망가진 탓에 당이 온몸의 근육에 쌓이면서 서서히 근육을 손상시키는 병이다. 처음엔 팔다리 근육이 힘을 못 쓰는 정도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 악화하면 심장이나 호흡기 근육까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행동에 제약이 있는 환우들이라 세상과 담 쌓고 지내는 경우가 많지만 임씨는 여행을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과 만났다. 그리고 그 과정을 ‘나나의 비상’이란 책으로 펴냈다. 다국적제약기업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가 후원하는 한국폼페병환우회의 ‘비상’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지난달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에서 만난 임씨는 폼페병을 “근육이 메말라가는 병”이라고 표현했다. 환우 한 명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임씨와 여행했지만, 다른 한 명은 침대에 누워 인공호흡기를 단 채 임씨가 찍어 전송한 영상을 클릭해 보는 방식으로 서울 여행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달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에서 만난 임지나씨. 그는 폼페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과 함께 서울을 여행한 경험을 담아 책으로 펴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임씨 역시 일상에서 순간순간 근육의 힘이 더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몇 년 전만 해도 모래가 가득한 바닷가를 걷는 데 큰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엔 모래 속에서 누가 붙잡는 것처럼 발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걸을 때 조금 절뚝거리거나, 앉았다 일어날 때 남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정도지만 언제 어떻게 더 나빠질 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임씨는 젊을 때 병명이라도 확실히 알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확진 받기 전 10여 년 동안은 막연히 근육병이라고만 생각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2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며 환우회 활동에도 참여한다. 폼페병의 유일한 치료제인 사노피-아벤티스의 마이오자임은 근육이 망가지는 속도를 줄여준다.

활동하는 환우회원은 임씨를 포함해 47명이다. 의료계가 파악하고 있는 국내 폼페병 환자도 100명 미만이다. 다만 일정하게 나타나지 않는 증상 탓에 폼페병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잠재 환자’는 더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채종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초기에 병을 발견하면 약으로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워낙 희귀병인데다 다른 병과 증상이 비슷한 경우가 많아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비상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날 생각이다. “환우들이 어떤 병인지 힘겹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웃의 따뜻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진단을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할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환우회를 비영리민간단체로 정식 등록해 활동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계획도 있다. 그는 “앞으로 내 몸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다. 한때 내가 희귀병 환자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나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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