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 문어발식 공격 경영...서아프리카 최대 재벌 일군 '시멘트의 제왕'

입력
2019.01.05 11: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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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코 단고테 '단고테 그룹' 회장. 단고테 그룹 홈페이지
알리코 단고테 '단고테 그룹' 회장. 단고테 그룹 홈페이지

아프리카에도 고층 아파트가 있을까. 아프리카에도 대기업이 있을까. 인터넷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해외 뉴스를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됐지만 아프리카는 여전히 오해와 편견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프리카 주민들이 여전히 사막 한가운데 오두막에서 살고 있을 거라 믿는 사람이라면 세계 100대 부호 가운데 한 명이 아프리카인이라는 사실에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설사 이를 믿는다 해도 유통ㆍ제조업으로 기업을 키워 재력을 쌓았을 거라 짐작하기보다 석유 같은 자원을 팔아 돈방석에 앉았을 거라 추측할 것이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단고테 그룹을 이끌고 있는 알리코 단고테(61) 회장은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보기 좋게 깨는 인물이다.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꼽은 ‘세계 최고 부자’ 순위에서 그는 141억달러(약 15조7,400억원)의 재산으로 100위에 올랐다. 100위 안에 든 한국인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62위ㆍ186억달러) 단 1명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시할 순위가 아니다. 2014년 보유 주식 가치가 치솟았을 땐 재산 가치가 250억달러를 넘어서며 2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순위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단고테는 수년째 아프리카 최고 부호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흑인’이라는 수식어도 갖고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순위나 재산 규모가 아니라 그가 현재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과정이다. 앞마당을 팠더니 석유가 샘솟아 돈벼락을 맞은 것도 아니고, 재벌 2세로 태어나자마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것도 아니다. 자신이 직접 설립한 회사를 아프리카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냈다는 점에서 단고테의 재산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초등학생 때부터 사탕 팔며 사업에 눈떠 

알리코 단고테는 1957년 나이지리아의 제 2도시 카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치인이자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서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재벌 가문 출신이었으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셈이다. 물론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았다거나 기업체를 물려받았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무일푼에서 출발해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군 이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단고테는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보살핌 아래 자랐다. 사업가 집안인 외가에서 자란 덕에 그는 일찌감치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것에 눈을 떴다. 단고테는 “초등학생 때 사탕을 한 상자 산 다음 학교에서 하나씩 팔았을 정도로 돈을 버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이슬람권 명문대 알하즈하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단고테는 스물한살의 나이에 평소 꿈꿔왔던 사업을 시작했다. 자금이 충분치 않았던 터라 외삼촌에게 3,000달러를 빌려 회사를 차렸다. 쌀이나 설탕 같은 생필품을 수입하는 회사였는데 외삼촌에게 빌린 돈을 3개월 만에 갚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단고테는 회사를 당시 나이지리아의 수도였던 라고스로 옮겨 사업을 확장했다. 생필품에 이어 그가 손 댄 건 시멘트였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석유를 수출해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돈으로 경제를 부흥시키느라 건설 붐이 일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시멘트를 자국 내에서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넘쳐나는 건설 수요를 위해선 해외에서 쉴 새 없이 시멘트를 수입해야 했다. 덕분에 단고테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물론 시멘트 수입이 단고테에게 무한한 성공을 갖다 준 건 아니었다. 1980년대 유가가 폭락하자 나이지리아는 빚더미에 올랐고 경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멘트 사업이 순조롭지 않자 단고테는 다시 설탕과 밀가루 같은 생필품 비중을 늘려나가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도 그 즈음이었다. 사업이 잘 될 때 방탕하게 돈을 허비하다 위기의 순간에 무너져 내렸던 외가 식구를 직접 봤었기에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고 순간의 성공에 안주하지도 않았다.

 ◇단고테 그룹, 서아프리카 최대 기업으로 성장하다 

타고난 워커홀릭이었던 단고테는 열정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갔다. 한 가지 사업에 성공하면 번 돈을 은행에 쌓아두는 대신 다른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 같은 도전은 끊임 없이 이어졌다. 그는 “당시엔 우리가 벌이고 있는 사업의 규모를 우리 스스로도 가늠하지 못했다”며 “내가 머릿속에 모든 걸 그리고 있었다면 그 모든 걸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외가로부터 자본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지만 단고테는 외부에서 큰 돈을 빌리는 걸 꺼려했다. 어쩌다 한 번 대규모 대출을 받게 되면 필사적인 노력으로 빚부터 갚아나갔다. 사업으로 번 돈을 금고에 쌓아두지 않으니 위태로운 순간도 많았다. 단고테는 “사업을 확장하느라 가진 돈을 다 써버린 적도 있었는데 그러다 사업에 문제가 생겼을 땐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려웠다”고 말했다.

단고테는 예의 바르고 온화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업에 있어선 무자비한 맹수처럼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예컨대 다른 회사가 설탕을 수입해 판매하려 들면 곧바로 가격을 떨어뜨려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막았다. 독재 정부와도 늘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경쟁사의 성장을 막으려는 전략이었다.

단고테는 단고테 시멘트, 단고테 제당, 단고테 제분 등 여러 사업체를 모아 1981년 단고테 그룹을 설립했다. 1980년대 저유가 시대를 지나 원유 가격이 바닥을 치고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사업도 안정권에 들어갔다. 주력 제품인 시멘트를 비롯해 설탕, 밀가루, 소금, 음료, 쌀, 생선 등 식료품에서 금융, 부동산, 운송, 석유, 비료, 천연가스, 섬유, 통신, 철강까지 문어발식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나이지리아를 넘어 서아프리카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중에서도 그룹의 핵심 기업은 단고테 시멘트다. 단고테 시멘트는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카메룬, 세네갈, 에티오피아, 가나 등 아프리카 10개국에서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는데 앞으로 18개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단고테 그룹의 2017년 매출은 41억달러(약 4조6,000억원)이며, 그 중 단고테 시멘트가 거둔 매출만 24억달러였다. 단고테 그룹은 자신들이 나이지리아 국민총생산(GDP)에 기여하는 부분이 10%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1997년 단고테는 해외에서 제품을 수입해 파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제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생필품을 수입해 팔면 결국 큰 돈을 버는 건 외국 회사들이고, 궁극적으로 국가 경제에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시멘트와 설탕, 밀가루, 소금 등 지난 20년간 수입해왔던 제품들을 직접 만들기로 하고 그간 벌어놓은 돈에 해외 대출까지 끌어와 대규모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친기업 정책을 폈던 당시 정부는 시멘트 제조에 나선 단고테 그룹을 물밑에서 지원했고, 덕분에 단고테 시멘트는 급성장할 수 있었다.

2014년 '포브스' 아프리카판 커버를 장식한 알리코 단고테 회장
2014년 '포브스' 아프리카판 커버를 장식한 알리코 단고테 회장

 ◇”사업 수익은 아프리카를 위해 재투자한다” 

단고테 그룹이 독재 정부와 유착하고 독과점 지위를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국민의 존경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전의 다른 나이지리아 기업들과 달리 국내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다시 국내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자원이 풍부한 경제 대국이지만 극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있어 빈부 격차가 매우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재산이 투자에 쓰이지 않고 대부분 은행 금고에 잠들어 있어 돈의 흐름이 막혀 있다는 점이다.

단고테는 사업 초기부터 돈을 벌면 은행에 두지 않고 재투자에 쓰겠다고 선언했다. 기업이나 개인의 금고를 채우는 대신, 그는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고용을 늘리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대규모 정유 시설 건설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세계 10위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정작 원유 수출액보다 많은 돈을 석유 제품 수입에 쓰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기업이 정유 공장을 짓는 게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이지리아에선 상황이 다르다. 국유화에 대한 염려나 불안정한 국내 정세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일반 기업은 좀처럼 인프라 산업에 투자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단고테 회장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건 아프리카의 다른 기업인들이 자신을 따라 투자해주길 바라는 측면도 있다.

단고테 그룹은 현재 150억달러를 들여 라고스 인근에 아프리카 최대 규모인 하루 65만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시설과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할 수 있는 정유ㆍ석유화학 공장, 송유관 인프라 등을 건설 중이다. 단고테 그룹은 정유 설비가 가동되면 나이지리아가 석유 제품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데 쓰는 비용을 줄여 연간 75억달러를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단고테 그룹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나이지리아 농업 분야에 50억달러를 투자하고, 유럽과 미국 지역에도 202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고향 카노에도 1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100㎿(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유전ㆍ가스전 개발에도 뛰어들어 원유 생산에서 정유ㆍ석유화학 제품 생산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도 있다. 유제품의 98%를 수입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낙농업에도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다.

단고테 정유 공장은 당초 2020년 완공 계획이었지만 2022년까지도 마무리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애초부터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단기에 수익을 내고 싶다면 절대 아프리카에 투자해선 안 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기 좋은 지역을 찾는다면 아프리카는 아주 좋은 곳입니다. 아프리카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먼 훗날 분명 후회하게 될 겁니다. 아프리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니까요.”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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