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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38> 나일강 3박4일 
나일강 크루즈 객실을 들어서면 흰색의 코브라가 여행객을 반긴다. 큰 수건 한 장으로 만든 코브라는 하이집트의 상징이다.

침대 위에는 흰색 코브라 한 마리가 몸을 세운 채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방비로 방문을 열었다가 심장 박동수가 급상승했다. 코브라는 호텔방에 비치하는 큰 수건 하나를 말아서 꾸민 데코레이션이었지만 상ᆞ하 이집트의 상징동물이 매와 코브라인 것으로 미뤄 이집트다운 장식이었다.

호텔은 나일강에 떠 있는 크루즈 배였다. 물밑에 가라앉은 지하 1층은 식당, 1층은 로비와 다목적홀, 2, 3층은 객실, 갑판은 수영장과 야외 레스토랑이었다. 옆 크루즈 옥상에는 수영하는 꼬마들이 넘쳐났지만 이 수영장과 나일강, 강 위를 떠다니는 배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은 복 만났다.

최근 카이로 기자피라미드 지구에서 베트남 관광객 3명과 가이드 등 4명이 폭탄테러로 숨지면서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지만 아스완의 나일강에서 이 뉴스를 들었다 해도 지구 반대편 사건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카이로와 아스완이 멀기도 했고, 나일강 위에 떠다니다 보면 세상일이 하찮게 다가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일강에 떠 있는 크루즈 전경.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며 강을 타고 도시를 누빈다.

사흘 밤 나흘 낮 나일강에서 살았다. 나일에 터 잡고 도시를 누볐다. 저녁 무렵 나일로 돌아오면 마음이 그렇게 푸근할 수 없었다. 떠 다니는 집이었다.

나일강에는 크루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대 지중해에서 돛이나 노로만 움직였던 무동력 돛단배 ‘펠루카’도 있었다. 크루즈에서 펠루카로 갈아타고 아스완 상류 쪽으로 달렸다. 전통 복장을 입은 뱃사공이 맨발로 고물과 이물을 오가며 밧줄과 돛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세월을 뛰어넘고 있었다.

뱃사공이 멀리 한 호텔을 가리킨다. 1937년 영국의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가 ‘나일강 살인사건’을 쓴 호텔이라고 했다. 올드 캐터랙트 호텔은 크리스티 덕분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 마치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던 쿠바 아바나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과 같았다. 4년 전 헤밍웨이가 묵었던 511호실에는 ‘에스페란사’라는 동갑내기 해설사가 환한 미소로 여행객을 반겼던 기억이 잠시 스쳤다.

뱃사공이 아스완의 나일강에서 고대 지중해를 누비던 돛단배 펠루카를 조종하고 있다.

나일강변에는 마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마차투어였다. 마침 식사시간도 2시간 가까이 남아있던 터라 마부를 불렀다. 3명이 1시간 타는데 총액 10달러로 흥정했다. 당초 1명에 10달러라고 하길래 재미로 깎아본 결과치곤 나쁘지 않았다. 굳이 1인당 40달러씩 받는 패키지 여행상품을 비교할 이유는 없겠다. 가이드도 먹고 살아야 하는 생업이니.

20대 초반의 마부 2명이 “페라리, 페라리”를 외치며 채찍질을 한다. 자신의 애마가 페라리 스포츠카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 친구들이 마부석 중간 자리에 나를 앉히더니 침을 튀겨가면서 말 자랑에다 아스완 자랑을 한다. 알아듣거나 말거나 맞장구를 쳐가며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기를 10여 분, 마차는 큰 도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더럭 겁이 났다. 땅거미가 진 골목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고 집은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몰골이었다. 불 켜진 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부에게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더니 누비아 마을을 둘러본다고 했다. 마부들도 누비아인이었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말이 많아졌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지만 일행 2명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부들은 길가에 서 있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마차에 따라붙는 꼬마들을 쫓아내기도 하면서 꼬불꼬불 골목길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 그 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지만 다시 큰 길이 나오고, 시장도 보이면서 마음이 놓였다. 그때부터 입도 닫았다.

배는 나일강을 따라 하류인 지중해 방향으로 달렸다. 하류가 북쪽에 있으니 강을 내려간다고 해야 할지, 올라간다고 말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현지인 해설사가 악어 머리의 소베크신을 모신 콤옴보 신전에서 관광객들에게 유례를 설명하고 있다.

나일강 오른쪽으로 BC 4세기에 세워진 콤옴보 신전이 야간 조명에 빛나고 있었다. 선착장도 바로 신전 근처다. 여행객들의 방문 루트가 나일강으로 이어진다. 불그스레한 조명은 건물의 역사를 원래보다 더 오랜 세월로 끌고 가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이 사원에는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와 악어 머리 형상의 소베크신이 모셔져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평소 두려웠던 악어를 신으로 숭배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곳에는 파라오가 소베크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부조와 악어를 미라로 만들어 모셔놓은 악어박물관도 출구 쪽에 있었다.

여행객들이 에드푸 호루스신전 입구에서 거대한 매의 석조물 등을 둘러보고 있다.

크루즈에서 느긋하게 한잠 자고 나니 에드푸에 도착해 있다. 이집트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기로 소문난 호루스신전을 가는 교통수단은 마차다. 수십 대의 마차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신전을 향했다.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한 쌍의 매 석조물만 봐도 이곳이 호루스에게 바쳐진 신전임을 짐작케 했다. 기념품과 책자에 호루스가 빠지지 않는 이집트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배는 다시 나일강을 달린다. 첫날 지하 1층에 있었던 식당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잘 몰랐지만 탁자 높이가 수면과 같았다. 창가에 앉으면 식탁이 유리창 바깥의 나일강물과 같은 높이로 이어지는 진풍경을 즐길 수 있어 항상 좌석 경쟁률이 높았다.

크루즈 한 척이 나일강을 통해 에드푸에서 룩소르로 가는 도중 갑문을 통과하고 있다. 갑문 앞에서 잠시 대기중인 크루즈의 승객을 대상으로 작은 배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낮에는 갑판의 긴 의자에서 뒹굴었다. 강바람이 쌀쌀하기는 했어도 햇살을 받고 있으면 상쾌했다. 그러기를 몇 시간째 국적 모를 감탄사가 어디서 터져나오더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일강을 길게 가로막은 보와 갑문이었다. 크루즈 몇 척이 나일강 서쪽의 갑문 앞에 몰려 있었다. 나일강에도 잡상인이 있었다. 작은 배에 옷과 기념품 등을 싣고 다니며 통과 순서를 기다리는 배 옆으로 다가와 호객행위를 했다.

첫번째 갑문은 수위조절을 하지 않아 그냥 통과했다. 멀리 하류 쪽으로 또 다른 보가 보였고 10여분 지나 또 다른 갑문 앞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이곳으로 크루즈 2대가 들어가니 앞뒤로 수문이 막힌 상태에서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배 높이가 한참 낮아진 후에야 하류 쪽 수문이 열렸다. 말로만 듣던 운하였다.

크루즈가 다시 힘을 낸다. 조금만 더 달리면 이집트 고대 수도 룩소르다.

글ᆞ사진 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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