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새해에 꾸는 남북환경공동체의 꿈

입력
2019.01.02 04:40
31면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에 이어 2019년도 희망과 시련이 교차하는 해가 될 듯하다. 대학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처럼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그래서 때론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어 가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지치고 힘들다 해도 평화와 공영의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늘이 돕는다면 올해는 분단 73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대전환의 황금돼지 해’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새해 이맘때면 누구나 꿈을 꾼다. 내가 꾼 꿈은 남북환경공동체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남과 북은 싫든 좋든 이미 하나의 환경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군사분계선 철조망도 남북을 오가는 바람길과 물길, 산맥의 흐름을 막지 못한다. 생명 유지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공기와 물, 생태계 관점에서 남한과 북한은 동일 영향권에 놓여있다.

남과 북이 단일한 환경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대기오염이다. 북한의 미세먼지 농도는 시기에 따라 남한 수준을 웃돈다. 저명 의학저널 ‘랜싯’에 따르면 북한은 인구 100만 명당 초미세먼지 탓에 발생하는 조기사망자 수가 세계 1위로 중국보다 많다. 수도권 초미세먼지의 약 14%는 북한에서 넘어온다. 남한의 미세먼지도 남풍이 불면 얼마든지 북한으로 올라갈 수 있다. 대기오염 연구자들의 지적대로 남과 북은 같은 공기를 마시는 ‘호흡공동체’의 구성원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환경공동체 시대를 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지리적, 자연적 동질성은 공동체 형성의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남북환경공동체는 교류·협력을 통한 신뢰 회복, 분단이 남긴 상처의 치유, 서로 다른 제도와 질서의 통합이라는 기나긴 과정을 통해 완성될 수밖에 없다. 최종 목적은 적대와 불신, 군사적 위기 조장, 체제 우월성 경쟁을 통해 유지되어온 냉전형 발전주의 모델의 대안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의 경제시스템 개혁과 국가운영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의 환경위기는 ‘계획의 실패’에서 비롯되었지만 남한 환경위기의 원인은 이중적이다. 1980년대 중반을 분기점으로 ‘국가개입의 실패’에서 ‘시장의 실패’로 변화해왔다. 산림황폐화, 수질악화, 대기오염 등 북한의 환경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난이 환경파괴를 부르고 환경파괴가 다시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전형적인 ‘저개발의 역설’을 보여준다. 남한도 환경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해마다 4대강 녹조와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이 반복되고 있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화학물질 안전에도 취약한 상태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은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뛰어 넘어 세계인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속한다. 북한에서도 환경문제는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환경보호 문제는 더욱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해와 올해 신년사를 통해 환경오염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환경 분야의 교류와 협력이 경제 제제에 가로막혀 지체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깨끗한 공기와 물, 건강한 자연은 생존의 기본 조건이다. 따라서 환경 분야의 협력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평화정착과 비핵화를 이룬다 한들 땅과 공기와 물이 죽은 상태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새해에는 환경 분야에서도 남북 교류와 협력이 활짝 꽃피길 기원한다. 미세먼지, 기후변화, 공유하천, 상하수도, DMZ 보호 등 함께 풀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우선은 환경지식의 공유와 공동조사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정부 차원의 실무회담 추진과 함께 국회와 시민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논의를 기대한다.

안병옥 고려대 OJERIㆍ환경생태공학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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