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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 없다” 임금 체불하고
“개인사업자” 퇴직금 지급 안 해
전문가 “법적 노동자 폭 확대를”
그림 1그래픽: 텔레마케터 임금체불 구제소송 [저작권 한국일보]_신동준 기자/

텔레마케터들은 업무에 걸맞은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지만, 관련 업체들은 법의 사각(死角)을 노리는 등 처우 개선을 외면하고 있다. 상당수 업체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 법안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 여성을 주로 고용하는 텔레마케팅 업계의 특성을 악용한다. 특수고용직(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으로 생활하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근로)과 근로계약의 차이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뒤 개인사업자로 분류해 추후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근로계약서를 업무 시작일이 한참 지난 뒤에 작성하고 그 새 일을 그만두면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노동권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급여지급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소재 휴대폰판매 텔레마케팅 업체에서 일했던 A씨는 2016년 9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근무하고 임금 240만여원을 받지 못했다. A씨는 “당시 사측의 입장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증거가 없다’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A씨처럼 임금을 받지 못 한 이들을 대신해 대한법률구조공단이 구조소송을 진행한 사례는 ▦2014년 41건 ▦2015년 52건 ▦2016년 81건 ▦2017년 51건으로 집계됐다. 법률구조공단 소송의 90% 이상이 사회소외계층(중위소득 50% 이하의 국민 등)을 대상으로 한 무료 법률구제임을 감안하면, 집계에 잡히지 않은 임금체불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발생해 공단을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임금체불 소송을 진행했거나 관련 법률을 몰라 임금체불 구조신청 자체를 못한 이들이 상당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임금과 관련 없는 노동기본권 침해 사례는 따로 집계에 잡히지 않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텔레마케터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업계의 악습을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률상 노동자에 대한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행 법률은 노동력을 제공한 형태 또는 시점을 기준으로 근로자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어 텔레마케터들이 ‘법률상 노동자’로 보호받기 까다로운 상황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현행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근로자 개념 정의를 매우 제한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탓에 업체가 텔레마케터를 노동자로 대우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이는 결국 임금체불, 노동권 침해 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상 근로자는 누구와 언제 어떤 형태로 계약을 맺었는지 등을 따지는 ‘사업종속성’을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다”라며 “앞으로는 실제 누구로부터 임금을 받았는지 등을 따지는 ‘경제종속성’ 관점에서 근로자를 정의하도록 관련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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