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19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은

입력
2018.12.31 04:40
30면

침묵 만으로 세계 관심 집중시킨 김정은

비핵화∙경제발전 의지 신년사에 담을 듯

4∙27선언 1주년,비핵화협상 모멘텀될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1월 1일 오전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1월 1일 오전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침묵은 고도의 정치다. 북한의 신년사는 매년 1월 1일에 행하는 예정된 정치적 발화 의례임에도 지난 3개월간 ‘침묵’은 그 관심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침묵이 길면 메시지에 대한 목마름이 클 수밖에 없다. 10월 7일 이후 북한의 침묵은 무성한 추측을 낳았다. 의도든 아니든 오직 침묵만으로 세계의 눈과 귀를 ‘신년사’에 집중시킬 수 있는 국가는 흔치 않다.

북한은 미국 중간선거 이후 미처 준비가 안 된 북미 협상에 연내 섣불리 나서 ‘갈등’을 키우기보다 협상시스템을 정비하는 쪽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7월 말부터 대북제재로 압박해 오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수립이 필요했다. 마땅한 대응카드가 없는 북한으로선 고심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내부의 인적ㆍ조직적 정비, 경제성과 챙기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침묵이 가져온 변화는 놀랍다. 9월 이후 대북제재를 유지하며 ‘서두르지 않겠다’고 여유를 부리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하 고위 인사들이 최근 연일 대북 유화 메시지를 보내느라 바쁘다.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 발언들과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성탄 메시지 등도 북한의 ‘판 깨기’ 신년사를 방지하기 위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국의 조바심도 커졌다. 연내 답방에 기대를 걸다, 내년 답방 성사를 통해 북미 대화를 촉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침묵’이 한미를 움직이고 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2019년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다시 한번 실용주의적 접근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대미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6ㆍ12 북미 합의 정신을 재강조할 것이다. 어렵사리 만든 북미 양자 대화 틀을 허무는 도발적 발언을 내놓을 가능성은 적다. 판을 흔들 경우 제재뿐 아니라 외교적 해법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등 감수할 위험이 커서다. 대내적으로도 김 위원장의 ‘담대한 결정’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된다. 평생 제재에 쫓기는 고립자로 살기엔 김 위원장의 집권기간은 길다.

비핵화 및 상응조치 관련 발언이 관전 포인트다. 그러나 직접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북제재가 결정적 약점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되니 최고지도자 발화의 위엄을 고려할 것이다. 비핵화 역시 9월 평양공동선언 5조를 재확인하거나 한반도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강조할 가능성은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일방적 비핵화가 아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철회 과정임을 강조하는 맥락에서다. 이 정도의 메시지면 1월 북미 협상 국면은 빠르게 속도를 낼 것이다. 비건 대표의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현실론으로 기울고 있다. 선(先) 핵 리스트 제출이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고 최근 미 국무부와 국제개발처가 공동 작성한 지역 전략보고서 역시 단기적 목표로 핵개발 동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남 메시지 중 군비통제와 관련된 과감한 제안도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일관된 군사적 위협 해소와 평화 의지를 대외에 알려 비핵화 의지를 세계에 전달하고 싶을 것이다. 더불어 경제발전 의지를 보여주는 메시지가 비중 있게 나올 것이다. 군 경제의 민수전환, 당ㆍ군 무역회사 통폐합 및 내각 이관, 경제법령 제정 등 경제개혁을 내년에는 더 과감히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4년차 돌입과 2020년 10월 당 창건 75주년을 앞두고 2019년은 경제 비전과 성과를 챙겨야만 하는 해다.

그러나 최대 승부처는 대북제재다. 대북제재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북한의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용이 아닌, 북미 적대관계 종식을 알리며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2019년 북미가 한국전 종전선언을 합의한다면, 그것은 안보리 제재 해제(스냅 백 포함)와 본격적인 비핵화 실행을 알리는 서곡이 될 것이다. 신년사와 판문점선언 및 신전략노선 1주년이 되는 4ㆍ27과 4ㆍ20 사이가 비핵화 협상 모멘텀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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