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준의 와이드엔터] 단순한 드러머, 그 이상이었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전태관

입력
2018.12.28 13:49
지난 27일 세상을 떠난 고(故) 전태관. 한국일보DB
지난 27일 세상을 떠난 고(故) 전태관. 한국일보DB

오래전 송골매의 건반주자 이봉환으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20~30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봉환은 팀에서 리더 배철수와 보컬 구창모 못지 않게 높은 인기를 누렸던 꽃미남 키보디스트였다. 노래도 잘해 구창모의 탈퇴 이후에는 배철수와 번갈아 보컬을 맡곤 했다.

그의 주장 혹은 경험에 따르면 악기와 연주자가 희한할 만큼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타리스트는 대부분 성격이 기타음처럼 날카롭고 예민한 편인데 반해, 드러머는 드럼음마냥 남자답고 둥글둥글한 성격이란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드러머는 팀에서 숨은 리더 역할을 맡을 때가 꽤 많다고도 했다. 드러머가 한번 박자를 놓치면 모든 연주가 엉망이 되므로 보이지 않게 중심을 잡을 수 밖에 없는데다,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팀원들의 갈등을 다독이는 중재자가 되곤 한다는 것이다.

해외 유명 밴드들을 봐도 비슷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데프 레퍼드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왼팔을 잃은 드러머 릭 앨런이 오른팔만으로 칠 수 있는 특수드럼세트를 제작해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렸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레드 제플린은 드러머 존 본햄이 사망하자 아예 팀을 해체해 버렸다. 드러머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설명하는 사례다.

지난 27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드러머 전태관이 6년여의 암 투병 끝에 분신이나 다름없던 드럼채를 영원히 놓고 말았다. 기타리스트 겸 보컬 김종진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주인공이 향년 56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이 음악팬의 한 사람으로 유독 슬프고 아쉬운 이유가 있다. 드러머가 밴드에서 기타리스트와 보컬 만큼이나 돋보일 수 있다는 걸 전태관이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처음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전태관이 없었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음악이 대중과 평론가들로부터 두루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김종진의 투박한 보컬과 끈적이는 기타 연주는 부드러우면서도 때로는 칼날같았던 전태관의 드럼이 뒷받침했기에 돋보일 수 있었다.

단적인 예가 매번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으로 꼽히는 이들의 1집과 2집이다. 한국적인 퓨전 재즈의 출발을 알렸던 두 음반에서 김종진이 만든 유려한 선율 만큼이나 귀에 쏙쏙 박히는 것은 전태관의 우아한 드럼 연주다.

음악 무대가 아닌 TV와 라디오 진행 등 방송에서도 전태관은 단순한 드러머 이상의 몫을 해 냈다. 살짝 철없는 소년 이미지의 김종진이 먼저 입을 열면, 전태관은 구수한 아재 화법으로 대화를 정리했다. 무대에선 서로를 빛나게 했던 단짝이었고, 방송에선 주거니 받거니 으뜸가는 만담 콤비였다.

하나와 하나가 모여 둘이 아닌, 둘이 만나 하나가 됐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었다. 하필이면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이 때, 더 이상 그들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됐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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