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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는다. ‘임중도원’(任重道遠ㆍ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이 선정됐다. 무슨 뜻인지 짐작은 가지만 좀 어렵다. 내가 혼자 선정한 사자성어(?)는 ‘팩트체크’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2018년 한 해 동안만도 검색 결과가 171만 건(전체 기간은 2,450만 건)에 달한다. 한국에서의 원조는 응당 JTBC겠지만,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연합뉴스, KBS, 중앙일보 등 각종 언론매체가 애용하고 있다. 체크 대상도 ‘북, 김정은 30일 서울방문’과 같은 소위 ‘가짜뉴스’에서부터 정책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액 연봉 줘도 최저임금 위반? 재계 주장 따져보니”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와 안 맞는다?” “민주당, ‘박근혜 때 카풀 허용’... 법 해석 달라” 등 대략 제목만 훑어봐도 주요 이슈의 내용과 흐름을 알 것 같아 유용하다.

며칠 전 JTBC 김필규 기자가 ‘팩트체크로 세상 읽기’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사실 확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1988년 미국 대선 사례를 예로 들었다.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는 공화당 후보인 조지 부시보다 지지율이 월등히 높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부시 측이 국방정책과 관련된 가짜뉴스를 배포해 역전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김 기자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팩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갔을 때 생기는 파급력은 실로 강력하다”고 말했다(The Science Times, 12월 24일 자).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가짜뉴스 때문만은 아니다. 복잡해 보이는 사안의 쟁점과 핵심을 추려내고 판단에 필요한 객관적 근거를 제공하니 건설적 토론에도 큰 보탬이 된다.

그러나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기에 팩트체크는 진위 판별에 충분치 못한 경우도 있다. 철저하지 못하면 한 줌의 사실로 전체를 왜곡할 위험도 있다. 정책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용도가 제한된다. 새 정책의 효과는 미래에 나타나기에 당장의 평가는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요인이 중첩돼 있어 그 정책만의 독립적인 영향을 찾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노동이슈처럼 이해관계 갈등이 첨예한 사안들은 사실보다 이데올로기 혹은 프레임이 앞선다. 그만큼 팩트의 힘은 삭감된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위험 외주화 방지 법안 등을 둘러싼 공방에서도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고용절벽, 자영업 몰락 등 각종 위기의 책임은 몇 푼 오른 최저임금과 아직 시행도 되지 못한 노동시간 단축이 모두 뒤집어썼다. 20조가 넘는 예산을 강바닥에 쏟고도, 4조5,000억원대의 회계를 분식해도 멀쩡했던 나라가 최저임금으로 망할 판이다. 비리로 얼룩진 사립 유치원 사태를 해결할 법안은 ‘사유재산 침해’ 프레임에 갇혀 무산됐고, 원청 사업주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물을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생태계론’에 가로막혔다.

관련 없는 사실들로 인과관계를 조작하고, 추상담론을 본질이나 맥락에 상관없이 들이대도 먹히는 이유는 프레임 때문이다. 프레임은 팩트에 선행한다. 필요한 사실만 선별할 뿐 진실을 식별치는 않는다. “프레임에 갇힌 정책 논쟁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에 집중하겠다.” 새 경제부총리의 취임 일성이다. 경제 불안은 심리의 문제이고 정책성과는 국민의 불신 때문이라고도 했다. 심리와 믿음을 중시하는 이가 인식의 틀인 프레임 논쟁에선 도망치려 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 기대할 게 없다. 정책 현장에서 프레임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최소한의 개선책마저도 대자본의 망국론에 걸려 넘어지는 현실을 직시하라. 실제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기득세력의 낡은 프레임부터 극복해야 한다. 임중도원. 소임은 막중한데 가야 할 길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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