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영토분쟁] 美 실효 지배 100년... 마셜제도 소심한 항의 “옛 왕조 때 우리 영토”

입력
2018.12.28 14:00
수정
2018.12.28 18:03
20면

<24> 웨이크섬

태평양에 위치한 웨이크 섬. 구글이미지 캡처
태평양에 위치한 웨이크 섬. 구글이미지 캡처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태평양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주요 전장이었다. 쿠바섬을 둘러싼 미국-스페인 전쟁, 일본과 미국이 정면으로 맞붙은 태평양전쟁 등 수많은 전쟁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하와이에서 서쪽으로 3,700km, 괌에서는 동쪽으로 2,400km 떨어진 웨이크섬도 자유롭지 못했다.

총 면적 8㎢로, 여의도 2.5배 면적의 무인도였던 웨이크섬은 태평양 전쟁을 겪으며 주인이 한 차례 바뀌었다. 처음 깃발을 꽂은 것은 미국이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미국함대가 발견하면서다. 하지만 웨이크섬의 전략적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본 일본은 1941년 진주만 공습에 이어 연이은 공세로 섬을 점령했다. 이 섬의 소유권은 잠시 일본으로 넘어갔지만,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하면서 주인이 다시 미국으로 바뀌었다.

태평양에서 전쟁의 포화는 잦아들었지만, 웨이크섬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만은 현재진행형이다. 섬 소유권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나라는 전쟁을 벌인 당사자 일본이 아닌 마셜제도공화국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1986년 미국의 신탁통치에서 벗어난 마셜제도는 “웨이크섬은 과거 마셜제도의 전신인 에넨키오 왕국의 영토였다”는 역사적 근거를 들어 지속적으로 섬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미국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미 미국이 웨이크섬을 실효 지배한 지 100년이 넘었고, 국제사회에서도 미국의 영토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마셜제도는 웨이크섬의 전통과 문화가 에넨키오 왕국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에넨키오 왕국은 주권국으로 인정받은 일이 없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막상 이의를 제기한 마셜제도 역시 세계 최강국 미국과의 싸움인 만큼 수위 조절을 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고, 관광이 국가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미국을 자극해봤자 득이 될게 없기 때문이다.

현재 웨이크섬은 미국의 군사 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전투기의 급유와 비상착륙이 가능하고, 지난 2015년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를 이용한 미사일 요격실험이 이뤄지기도 했다. 미국이 태평양 너머 아시아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미국과 마셜제도가 직접적인 마찰은 빚지 않았지만, 태평양이 다시 시끄러워진다면 이 섬을 둘러싼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이슬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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