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 간판 내건 농어촌 민박… 보일러 점검한 적 있습니까

입력
2018.12.20 04:40
수정
2018.12.20 07:2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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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 무방비 농어촌민박… 법적 ‘관광펜션’과 달리 기준 허술 

 사고 난 강릉 펜션 인근 30곳 중 가스누출경보기 갖춘 곳 드물어 

[저작권 한국일보] 수능 시험을 마친 고3 학생 10명이 사고를 당한 18일 오후 경찰들이 강원 강릉시 경포호 부른 아라레이크펜션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수능 시험을 마친 고3 학생 10명이 사고를 당한 18일 오후 경찰들이 강원 강릉시 경포호 부른 아라레이크펜션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점검을 잘 안 하긴 했는데, 이제라도 해야겠죠.”

강릉 펜션 참변 하루 뒤인 19일 경포대 근처에서 펜션(농어촌민박)을 운영하는 최모(40)씨는 “보일러는 주기적으로 점검하냐”는 질문에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가스 유출 추정 사고로 인근 펜션에서 고등학생 3명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배기구가 보일러와 제대로 연결됐는지, 가스가 새는 곳은 없는지 직접 확인했다’고 했지만, 정작 “그럼 보일러실을 한 번 보여달라”는 요청에는 극구 손사래를 쳤다. 가스누출탐지기 설치 여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최씨는 “뭐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던데 달아보려고 찾아보기는 했다”고 머쓱한 표정만 지었다.

막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교 3년생 3명이 안타깝게 사그라진 참변에 정부가 농어촌민박집에 대한 전수 조사와 안전 관련 제도 정비를 꺼내 들었다. 참변이 난 아라레이크펜션은 간판만 펜션일 뿐 농어촌민박집이다. 농어촌 수익 증대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규제보다는 사업 편의에 초점을 맞췄던 그간의 방식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대책이라는 지적. 실제 사고가 난 장소 인근에도 실상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안전 시설을 구비해도 문제가 없는 농어촌민박이 줄지어 있었고, 이들 중에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가 뒷전인 곳이 부지기수다.

[저작권 한국일보]농어촌민박 주요 위반사례 건수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농어촌민박 주요 위반사례 건수_김경진기자

이날 본보 기자들이 둘러본 30곳 가까운 강릉 일대 농어촌민박 대부분은 보일러실을 건물 내부에 설치해 두고 있었다. 이번 사고처럼 배기구가 분리되거나 혹은 배기장치에 문제가 생겨 가스가 집안으로 역류할 경우 투숙객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출을 알리는 가스누출경보장치를 갖춘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업주들 인식은 안이했다. 민박집 운영자 윤모(67)씨는 “베란다에 설치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건물 밖에 별도로 공간을 만들려면 비용이 드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을 정도.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민박집 주인은 “가스 배관(배기구)이 샌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운영자 최모(75)씨는 “가스누출경보기를 달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이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펜션과 농어촌민박의 허가 및 안전관리 기준은 천양지차다. 펜션은 3층 이하 건축물에 객실 30개 이하인 숙박시설로 소방법이나 공중위생관리법에 의해 엄격한 규제를 받는 반면, 농어촌민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농어촌 지역에 직접 거주하고 230㎡ 미만 연면적(건물 각 층 바닥면적을 합한 총면적)을 갖춘 주택만 있으면 누구나 신고해 운영할 수 있다. 소방이나 안전시설도 소화기와 화재경보기만 있으면 되고, 정밀 소방점검 대상도 아니다. 농어촌민박집 주인 정모(64)씨는 안전 시설을 좀더 보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법에 정해진 대로만 하면 되지 않느냐, 우린 시키는 대로 서류 내고 사람들을 받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규제가 별로 없으니 다양한 형태로 불법 운영되는 농어촌민박은 전국에 한둘이 아니다. 실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감시단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개월간 전국 농어촌민박 2만1,701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5,772건의 불법 행위가 적발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참변 같은 사고 등을 예방할 수 있는 소방ㆍ안전 적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연면적 기준(230㎡) 초과로 단속된 곳(37.2%)이 가장 많을 뿐, 조사 초점이 소화기나 화재경보기 등 시설의 ‘적격 여부’라 정작 안전 미비 등으로 적발된 곳은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뒤늦게 안전관리 실태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현재 농어촌민박을 포함한 농촌관광시설은 연 2회(동절기 하절기)에 걸쳐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소방시설, 취사시설 중심으로 안전관리 실태 점검을 받게 되는데, 표본 조사다. 다 점검하는 게 아니라 일부만 찍어서(표본)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 참변이 나자 원래 진행 중인 동절기 점검기간(이달 1일~내년 2월 15일)을 연장하고 부랴부랴 전수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월 1회 가스 누출 점검’으로 국한된 가스 관련 점검항목을 보다 세분화해 가스시설의 환기, 배기통 이음매 연결 상태 등을 추가한다는 방침이다. 또 농어촌정비법 개정을 통해 농어촌민박 신고 시 시설 기준에 일산화탄소감지기 설치를 포함할 계획이다. 김종훈 농식품부 차관보는 “야영장 및 캠핑장에는 내년 1월부터 시설 기준에 일산화탄소감지기가 포함되는 만큼 농어촌민박도 이 기준을 따르도록 법을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강릉=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강릉=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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