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을 것 없는 김정은, 서울 올 이유 없었다…청와대 미련 때문에 호기심만 커져

입력
2018.12.15 10: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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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핵화 협상 동력 위해 성사 추진 

 북 호응 안하며 야당 공세 빌미 돼 

 북미 고위급회담부터 다시 풀어야 

 내년 초 답방ㆍ북미 정상회담 땐 

 문 대통령 승부수 평가 바뀔 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 관련 진행 과정_송정근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 관련 진행 과정_송정근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사실상 무산됐다고 청와대가 결론을 내렸다. 가능성이 사라진 만큼 향후 초점은 김 위원장의 답방 시기가 내년 1~2월로 예상되는 2차 북미정상회담 이전일지 그 이후일지에 맞춰지는 분위기다. 청와대 측은 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내’ 서울을 방문하기로 한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추진했지만 북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으로선 답방을 위해선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에서 좀더 성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의 의지나 안전문제보다 군부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심했다는 전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경협과 대북제재 완화 등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데 대해 불만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연내 답방 무산에 대한 반응을 놓고 본보 외교안보팀과 국회팀 기자들이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연내 답방이 물건너간 사정이 뭔가요. 그럼 언론들이 보도한 정부당국자발 소문들은 다 뭐였나요. 

여당탐구생활=당초 정치권에선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습니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대북제재 완화는 사실상 북미간 문제인데 서울에 와봐야 얻을게 별로 없다는 것이죠. 여당내에선 혹시나 모를 비상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우려도 상당했고요. 태극기부대가 인공기를 불태우거나 화형식 등을 한다거나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 예측하기 어려운 파장들에 대한 우려가 클 수 밖에 없죠.

가끔 낮술(낮술)=문 대통령의 9월 20일 평양 방문 이후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정확한 워딩은 이렇습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라는 의미와 함께 남북이 본격적으로 서로 오가는 시대를 연다는 그런 의미를 갖습니다. 여유를 두기 위해서 시기를 ‘가까운 시일내’라고 표현했지만 가급적 올해 안에 방문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양측이 가급적 연내 답방 성사시키자고 합의했다는 것이죠. 다만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북측으로선 ‘가급적 연내 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국군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국군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판문점 메아리(메아리)=성사되든 안 되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청와대 입장이었죠. 오겠다는 대답을 북측으로부터 듣지 못한 상태에서 은근히 촉구하려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요. 언론은 대답을 들어놓고도 청와대가 상대를 배려해 숨기고 있으리라는 의심을 했죠. 그런 상태에서 청와대의 준비 동향이 감지되자 일부 매체가 정보라 부르기엔 확인이 덜 된 이른바 첩보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언론의 상업주의와 청와대의 비밀주의가 상승효과를 내면서 이미 독자들의 호기심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었죠.

삼각지 미식가(미식가)=청와대의 '미련'이 만들어 낸 촌극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달 북미고위급회담 빨간불이 켜졌을 때 김 위원장의 답방도 물 건너간 거였죠. '북미고위급회담-대북제재완화 군불-서울답방' 이란 북한의 밑그림이 말 그대로 그림에 그친 거죠. 그런데도 청와대가 이런저런 추측과 관측을 부추긴 측면이 있어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같은 태도를 취했고, 물건너 간 답방에 미련을 둔 저자세 외교로도 비쳐졌습니다.


불나방=한미정상회담 뒤 문 대통령이 사그라져가던 연내 답방설에 불을 지폈지요. 집착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어떤 배경이 있나요. 연내라는 시점에 큰 의미라도 있나요.

낮술=이 문제를 어떤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상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건 미국 타임지가 문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 5위로 꼽을 만큼 인정받고 있죠. 김 위원장의 답방을 어떻게든 연내에 성사시키려 한 것도 북미 비핵화 협상에 다시 동력을 마련하고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승부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야당이 물어뜯기 좋은 ‘실패한 승부수’ 내지 ‘무리한 집착’이 돼 버렸습니다. 한 켠에선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에만 매달라고 있다”는 시각도 있고요. 문 대통령으로선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기에 감내해야 하는 비판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내년 초 김 위원장의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한 후의 평가는 또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사실 북한 비핵화라는 긴 여정까지 이런 시도와 실패 내지 극적인 반전이 거듭되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미식가=연내 철도연결사업 착공식, 연내 종전선언, 연내 북미 2차 정상회담, 연내 김 위원장 답방까지. 남북간 공감대를 형성한 시간표는 모두 '연내'를 향하고 있었죠. 올 초 평창동계올림픽으로 한반도 해빙무드를 띄웠을 때부터 연내 종전선언 및 대북제재 완화라는 목표를 향해 남북이 함께 달렸던 거죠. 외교도 흐름과 기운이 중요합니다. 평창을 판문점으로 잇고, 판문점을 싱가포르로 잇고, 싱가포르를 평양으로 잇는데 까지 성공했는데, 마지막 서울로 잇는데 실패한 셈이죠. 내년 초 김정은 신년사를 필두로 다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시간표가 짜여지지 않을까요.

불나방=김정은 방남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하고 내려온다면 테러라도 하겠다고 벼르는 사람들도 많죠. 남남갈등의 불씨가 될 게 뻔해 보이는데요. 정치권은 어떻게 보나요.

21세기소년백서=김정은의 국회 연설 기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연내 답방 의사를 밝힌 뒤, 국회 연설이 추진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죠. 범여권에선 국회 연설이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한 상징이 될 것이라며 호응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권 인사들을 만나보면 제법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한국당과 대한애국당 등 보수정당이 본회의장에서 반대 피켓이라도 들거나 소동을 일으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답방을 반대하는 메시지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답방을 반대하는 메시지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불나방=북미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죠. 김 위원장 답방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미국은 비핵화 속도보다 남북관계가 앞서는 걸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메아리=미국은 시설과 활동, 프로그램, 무기 등 핵과 관련한 모든 걸 일단 신고하라고 압박 중입니다. 그래야 폐기 계획을 짤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하지만 북한은 그럴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어쩌면 당연하죠. 아직 미국이 그럴 만한 신뢰를 북한에게 주지 못했으니까요. 미국은 강자입니다. 가난과 고통을 감내하며 만든 핵을 그냥 공짜로 빼앗기고 정권마저 무너질까 봐 북한은 두려운 거죠. 북한은 본격 비핵화 착수 전에 양측의 오랜 적대관계부터 청산하기를 바랍니다. 비싼 값에 사주는 식으로, 지금껏 자기들이 핵을 만드는 데에 들인 비용을 미국이 보상해 줬으면 하는 거죠. 그러면 핵을 가지고 가난을 견딜 이유도 없는 거고요. 하지만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만물을 선악으로 가르는 게 미 주류의 특징입니다. 거래가 성립할 수 없는 거죠.

불나방=그럼 김 위원장은 언제쯤 서울에 올까요.

미식가= 북미 고위급회담 성사에 달렸습니다. 거기서부터 꼬였으니, 거기서부터 다시 풀어야 합니다. 북미 간 다시 '협상판 앉았다'는 확실한 시그널이 있기 전까지 김 위원장을 서울에서 보긴 쉽지 않아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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