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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바울의 열등감

이제는 몇 번씩 겪는 일이라 놀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처음에는 꽤 당황했다. 항상 영등포 역 근처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에만 발생했던 일이다. 그날도 서있는데, 어느 점잖은 신사분이 가까이 오시더니 명함을 건네주었다. 가발 가게 명함이었다. 순간 나는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고, 연달아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남자에게 탈모는 큰 열등감을 준다.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난 정말 괜찮다. 머리카락 없이 살아도 인생이 그리 흉악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자에게 머리카락은 천하에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머리카락이 없으면 얼마나 간편하고 상큼한지 탈모인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물론 종종 민망한 경우는 있다. 교회에 가면 유치부 아이들이 가끔 대머리라고 놀린다. 난 괜찮은데, 옆에 있는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아이를 혼낸다. 놀리는 아이들보단, 혼나는 아이들 때문에 내가 더 당혹스러워진다. 사실 요사이 남자에게는 탈모가 큰 열등감의 요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의 맞선 상대 중, 기피 1호 대상이 대머리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젊은이에게 탈모란 그들을 위축시키는 큰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작고 볼품없던 대머리 바울

전승에 의하면 위대한 전도자 바울은 신장이 작고 꾸부정하며 대머리라고 한다. ‘개구쟁이 스머프’에 나오는 ‘가가멜’이 상상된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학식이나 담대한 성격을 생각해 보면, 자격지심이란 전혀 없을 것 같다. 대머리는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살펴보면, 그도 열등의식에 괴로워하였던 흔적이 있다. 특히 고린도 지역의 교인들을 향해서 그러했다.

그 교회에는 바울에게 적대적인 이들이 있었고, 불쾌할 정도로 그를 비교하고 비판했던 모양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느꼈던 모멸감이 잘 읽혀진다. 교인들이 자기보다도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더 환영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 거물급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11:4-5) 가르침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석학이었기에, 바울이 크게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바울이 언변이 좋지 못했다. 옥스퍼드대를 나온 목사님인데, 교회에 모셔오고 보니 설교를 잘 못하시는 격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또 다시 자기 입으로 이런 맘 아픈 말을 했다. “내가 말에는 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11:6) 대 석학 바울이 자꾸 이런 말을 하니 더 딱하고 측은하다.

더 나아가 자기는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무료로 섬겼다면서 공치사까지 한다. “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삯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낸 셈입니다.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빈곤하였지만,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친 일은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11:8-9)

19세기 초 러시아 북쪽 혹은 발트 해 지역의 러시아 정교회 성화에 묘사된 사도 바울. 썩 멋지게 보이는 사람은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기 고생담까지 늘어놓으니, 속된 말로 좀 찌질하게 보인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11:24-27)

◇영적 경험마저 부족했던 바울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대 사도 바울의 모습이다. 이어지는 그의 발언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가장 깊은 열등의식마저 드러난다. 고린도 교회는 영적 현상이 많았던 곳이어서, 환상을 보거나 계시를 받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경험이 상대적으로 빈곤했었나 보다. 결국 바울은 자기도 그런 경험을 해보았다며 은근히 자랑을 해야 했다. 민망했는지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했다.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12:1-4)

지금껏 바울의 말은 마치 ‘루저 (loser)’의 넋두리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는 그의 천재적 전략이었다. 이어지는 말에서 그는 자신의 측은한 자랑을 멈추더니, 자기의 가장 깊은 상처 하나를 노출한다. ‘가시’로 표현된 자신의 불치병에 대해 말한 것이다.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12:7-9)

바울은 그가 환상이나 계시의 경험이 적다고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조롱받았다. 그러나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영적인 능력에서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병은 치유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남 보기에 민망했을까? 하나님께 고쳐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거부하셨다. 그리자 인류 역사에 남을 명언이 바울의 입을 통해 남겨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신앙인들 사이에 가장 애독되고 있는 그의 고백이다. 약할 때 가장 강했다는 그의 고백이 지난 20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서 끌어내어 다시 일으켜 세웠는지 모른다.

◇약점도 예술이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약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약점이 열등감이 되면, 이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괴롭히는 ‘귀신’이 되어버린다. 반면 그 약점을 잘 다루면, 그야말로 ‘예술’이 된다. 그래서 팔이 없어 두 발의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류 웨이 (Ryu Wei)의 연주는 한마디로 예술이다. 완벽하게 아름답다. 손가락으로 하는 연주보다는 분명 기술적으로 열등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들에 내는 선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무엇이 그의 음악을 그토록 아름답게 하는 것일까? 기이하게도, 피아노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불편한 자세와 어색하게 움직이는 그의 발가락 터치가 그의 연주를, 아니 그의 음악을 ‘완벽(absoluteness)’으로 이끈다. 가장 약한 것이 정말로 가장 강한 것이 되었다. 그의 육체적 약점이 그의 정신에게는 도전과 혁신이었다. 피아노 건반을 반드시 손가락으로 쳐야만 하나? 류 웨이의 약점은 음악뿐만 아니라 메시지마저 생성했다.

탈모가 약점일 뿐일까? 나는 뜻하지 않게 매우 자연 친화적이다. 샴푸를 눈곱만큼만 사용해도 나는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가 된다. 헤어스프레이나 헤어 젤, 헤어드라이어는 전혀 모르며, 사전을 찾아봐야만 그 뜻이 뭔지 알 수 있다. 머리가 노출이 심해서, 아내가 날 많이 예뻐한다.

바울은 약하고 절박했기에, 온전히 절대자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잘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에게 완전히 자신을 맡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 가운데에 바울만큼 폭발적으로 자신이 믿는 신을 대변하고 전파한 이가 없다. 이렇게 하나님을 가장 잘 알릴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자기 머리를 믿고 신을 공부해서가 아니라, 마음 아프게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존했었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신께는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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