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낳아 재산 한몫씩 배분한 서양, 큰아들에게 몰아준 동양

입력
2018.12.14 04:40
22면
구독

 [책과 세상] 백승종 ‘상속의 역사’ 

위 사진은 300년 부잣집이었다는 충남 논산 명재고택. 아래는 독일의 대농가. 정도와 양태의 차이는 있었을 지 몰라도 부의 증식, 상속을 통한 대물림에는 비슷한 도전과 비슷한 응전이 뒤따른다. 사우 제공
위 사진은 300년 부잣집이었다는 충남 논산 명재고택. 아래는 독일의 대농가. 정도와 양태의 차이는 있었을 지 몰라도 부의 증식, 상속을 통한 대물림에는 비슷한 도전과 비슷한 응전이 뒤따른다. 사우 제공

우리 조상이 농사를 지었다는 이유로, 현대 도시 문명이 싫다는 이유로, 또 기타 등등 여러 다른 이유로 우리는 과도할 정도로 농촌을 정이 넘치는 이상적인 공동체인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정말 그러하기만 할까. 가령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경우, 좋은 집안에서 예쁘고 매력적으로 자랐으나 모진 세상 만나 고생 진탕한 스칼렛 오하라 이야기로만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엔 믿을 건 땅 밖에 없다고 선언하는 백인 대지주 스토리로 읽을 것인가.

남의 말 할 것도 없다. 조선을 두고 염치를 중시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우겨보느라 애쓰지만, 여러 소송 자료들을 보면 조선은 땅을 두고 염치도 예의도 없이 참으로 치열하게 싸워댄 소송의 왕국이었다. 이 책에도 그런 사례들이 여럿 나오는데 집안에서 코딱지만한 땅을 두고 분쟁 한번 겪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이야기들이다. 부의 원천이 오직 땅 하나뿐인 농촌 사회라면, 그 한정된 땅을 둘러싼 저열한 암투가 뒤따르는 게 인간사 보편 법칙이라 보는 게 옳다.

땅 문제의 핵심은 상속이다. 지주가 한평생 열심히 땅을 늘려 제 아무리 광활한 땅을 보유했다 해도 자식들에게 고루 나눠 주길 몇 세대에 걸쳐 반복하면, 결국 한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땅을 나눠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어떤 전략을 쓸 것인가.

‘상속의 역사’는 땅을 둘러싼 이런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그려낸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넓은 보폭 덕에 이야기가 한층 입체적이고 흥미롭다.

가령, 서양은 부모 자식간에 ‘유언장’ 혹은 ‘은퇴계약서’를 썼다. 집과 농지 등을 물려줄 테니 대신 나에게 머물만한 오두막과 음식 등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계약서는 무척 구체적이었다. “일주일에 우유를 몇 리터나 제공할 지, 버터와 치즈는 얼마만큼의 분량을 잡수시게 할 지, 고기 요리는 한 달에 몇 번이나 식탁에 올릴 지” 등을 세세하게 정했다.

이 오랜 전통은 20세기 초를 전후해 각종 연금이 도입되는 등 복지정책이 시행되면서 사라졌다. 동양은? ‘효’라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했으니 예전엔 필요 없었다. 현대사회로 전환된 뒤가 문제다. 효는 사라지고 복지는 나타나질 않으니 노인층 빈곤과 자살은 급증할 수 밖에 없다. 복지하면 나라 거덜난다는 말을 믿는 경향이 강하니 당분간 이 상황을 타개할 정치적 동력도 없어 보인다.

또 다른 비교거리는 서양은 ‘제한’에, 동양은 ‘차별’에 힘썼다는 점이다. 재산은 나눠주면 줄어든다. 그래서 서양 귀족은 자식을 되도록 적게 낳았다. 늦게 결혼하고 정확한 상속자가 생기면 더 이상 정부인과 관계를 맺지 않았다. 물론 서양 남자도 남자이긴 매한가지여서 바람 피워 자식을 낳았다. 중세의 기사, 성직자가 위선적이라 비웃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들은 상속에서 배제되어 삐뚤어진, 불쌍한 자손들이다. 이에 비해 다산이 복이요, 첩 등을 통해 자식을 더 많이 낳을 수 있었던 동양은 적서를 차별하고 자식 중에서도 맏아들만 특별히 우대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게 대가족제도다. 서양은 비공식적 자식, 동양은 공식적 자식들이 많으니 세대를 거듭할 수록 상속에서 배제된 이들의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대가족제다. 서양은 가톨릭의 대부모제도를 활용했다. 마피아 영화 ‘대부’로 널리 알려진 패밀리 개념은, 실은 주된 상속자에게 다른 자손들도 돌보라는 압력이었다. 동양의 경우 어렵지 않게 그것이 바로 ‘집안’임을 깨달을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일종의 ‘재단’에 비유한다. 현대사회에서도 부자나 기업들은 상속을 위해 이런저런 재단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모 관계, 집안 관계를 중시하는 것도 결국 그런 개념과 유사하다는 의미다.

렘브란트의 그림 '포목상조합의 이사들', 아래에는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부유한 부르주아의 길드란, 성공적 상속을 위한 장치다. 사우 제공
렘브란트의 그림 '포목상조합의 이사들', 아래에는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부유한 부르주아의 길드란, 성공적 상속을 위한 장치다. 사우 제공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독일 서남부의 슈바벤 지역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와 달리 슈바벤 지역은 모든 자식에게 고루 재산을 주는 균분상속 원칙이 오랫동안 훼손되지 않았다. 대지주 후손이라 해도 몇 대만 내려가면 별달리 받을 땅이 없다. 이런 조건이라면 “사람들은 전업농이 되기를 포기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바쁘다.” 대안은 지식과 기술이었다. 그 결과 “하이델베르크대학을 비롯, 튀빙겐대학과 프라이부르크대학 등 독일의 대표적 명문 대학들이 슈바벤에 위치”하게 됐다. 독일 경제의 밑바탕이라면 다들 떠올리는 수천 개의 강소(强小)기업, 미텔슈탄드(Mittelstand)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도 슈바벤이다.


 상속의 역사 

 백승종 지음 

 사우 발행ㆍ272쪽ㆍ1만6,000원 

슈바벤 사례를 읽다 보면, 자연히 시선은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 그러고 보면 순전히 상속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나라는 조선 아니었을까. 맏아들 우대, 적서차별은 조선 사회 내부는 물론, 이웃 중국이 혀를 내두를 만큼 가혹하게 적용했다. 균분상속이 사라지면서 각 지역의 상속재단 격인 문중은 날로 커졌다. 농업 이외 상업도 다루고 직계 후손만 뭉치는 중국과 달리, 조선의 문중은 오직 농업만 다루고 방계까지 포함하는 거대 조직이었다.

흔히 16세기 이후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됐다고들 하는데, 거꾸로 자신들 입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상속을 위해 성리학이라는 핑계를 끌어다 댄 것은 아닐까.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지만, 어쩌면 이런 현상은 16세기 이후 조선에서 익히 봐왔던 일 아니었을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