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아는 엄마 기자] 대면 생략된 스마트폰 채팅, 아이들 의사소통 능력을 앗아가

입력
2018.12.15 10: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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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현장 체험학습을 앞둔 날 저녁, 준비물을 챙기던 아이가 갑자기 TV 옆에 놓인 전화기를 가방에 넣었다. 소풍 가는 초등학생에게 집 전화가 필요할 리 만무했기에,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끼리 놀이기구를 타는 자유시간이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놀이공원이 워낙 넓으니 연락이 될 수 있는 휴대폰 번호를 적어 내라 했다는 것이다. 휴대폰이 없는 아이는 집 전화번호를 써냈고, 그래서 선생님이 전화할지 모르니 집 전화기를 가져가야 한다는 거였다.

요즘 말로 ‘빵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아이의 진지한 눈빛에 꾹 참으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전화가 잘 될지 확인해보고 가는 게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좋은 생각이라며 아이는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하곤 집 전화를 들고 나갔다. 잠시 뒤 내 휴대폰 너머로 아이는 숨을 헐떡거리며 “엄마, 자꾸 지지직거리긴 하는데 그래도 잘 들려”라고 알려줬다. 베란다에서 내다보니 녀석이 아파트 코앞 분리수거 쓰레기통 근처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스마트폰을 갖고 다닌다는 한 공익단체의 조사 결과를 실감한다. 아이 친구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옛날식 폴더폰이나 어린이 전용으로 나온 키즈폰이라도 갖고 있다. 이 폰도 저 폰도 없는 아이는 손에 꼽힌다. 상황이 이러니 담임도 반 모든 아이와 당연히 휴대폰으로 연락이 가능할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주변 엄마들에게 아이한테 왜 휴대폰을 사줬는지 물어봤다. 대답은 비슷했다. 아이와 연락이 안 되면 걱정돼서, 친구들이 다 갖고 있는데 혼자만 없으면 서운해할 테니까, 아이들끼리의 문자메시지나 채팅에 끼지 못하면 친구가 줄어들 것 같아서 등이 주요 이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을 쥐여준 뒤에도 걱정은 결코 줄지 않는다.

교실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휴대폰의 소리나 진동을 못 듣기 일쑤다. 별의별 게임과 동영상을 공유하는데도, 웬만한 유해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은 소용이 없다. 스마트폰 다루는 방법을 빛의 속도로 터득한 아이가 엄마 아빠 머리 꼭대기에 앉는 건 시간문제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아이들이 신호등이나 자동차 대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상황은 일상이 됐다.

이보다 더 걱정되는 건 어릴 때부터 기계적인 의사소통에 길든다는 점이다. 언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능력이다. 사람들 간의 대화는 단순한 내용 전달을 넘어선다. 말의 높낮이와 빠르기, 말할 때의 눈빛과 표정, 동반되는 동작 등을 보고 들으며 상대방이 사용한 언어에 숨어 있는 의미와 감정을 읽어낸다. 이런 능력이 어릴 때부터 저절로 발휘되진 않는다. 자라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대면(對面)이 생략된 온라인 채팅은 이를 방해한다. 아이들은 채팅방에 없는 친구를 흉보고, 욕설이나 거친 표현을 내뱉으면서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글 쓰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나이인데 문자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려다 보니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쉽지 않고 오해를 부르기 십상이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결국 배려보다 비난에 더 익숙하게 만든다.

공학자나 윤리학자들은 기계를 매개로 한 간접 의사소통의 부작용에 대해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 인터넷과 통신 기술의 발달이 인간 대화의 중요한 요소인 이해와 배려를 앗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초등학교에서조차 이미 현실이 됐다. 아이의 한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채팅을 하며 호기심에 욕설을 써봤다. 그걸 본 친구는 왜 욕을 하냐며 다른 욕을 적어 맞섰다. 비뚤어진 호기심일까, 과민 반응일까. 우연히 자식의 스마트폰을 본 부모의 팔은 대개 안으로 굽는다. 자식보다 자식 친구부터 탓하기 쉽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런 태도를 배운다.

현장학습에서 돌아온 아이는 집 전화를 꺼내 놓으며 집 밖에선 안 터진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스마트폰 없이도 길 잃지 않고 원하는 놀이기구를 다 탔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친구들은 다 아는 온라인 세상을 아이만 모를 수 있겠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세상이 아이에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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