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동네 가게와 카드수수료 인하

입력
2018.12.14 04:40
31면

우리 동네에는 포장 전문 통닭집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바삭한 소리가 날 것 같은 크리스피치킨이 내가 사랑하는 메뉴다. 이곳을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반 마리를 팔기 때문인데, 점점 불러오는 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늦은 밤 혼자 맥주 한 캔 마시는 걸 낙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안주로서의 반 마리 치킨은 가격으로도, 양으로도 딱이다. 그런데 이 통닭집 사장님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내가 통닭을 한 마리 사고 나갈 때면 그냥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반 마리를 사는 날이면 꼭 “소스 하나 가져가세요”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서비스로 소스를 하나 준다면 반 마리가 아닌 한 마리 살 때 주는 것이 맞지 않은가? 통닭 반 마리를 안주 삼아 홀로 맥주 한 잔 하는 중년 남성에 대한 연민인가? 반 마리를 살 때만 내가 단골이라는 것이 눈에 띄었나? 늘 그것이 궁금했는데 얼마 전 이유를 알았다. 통닭집 벽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현금 결제 하시면 소스 하나를 드립니다.’

아무리 편의점에서 껌 하나 사도 카드를 내는 세상이라 해도, 난 적은 금액을 결제할 때 카드를 내는 것이 주저된다. 특히나 점원이 아닌 가게 주인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도 동네 구멍가게에서보다는 편의점에서 카드 소액결제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사람의 차이였다. 편의점에서도 주인이 계산대에 있으면 2,000원짜리 맥주 한 캔 사고 카드를 내기가 좀 미안하다. 사정이 그러하니, 난 통닭집에서도 한 마리를 살 때는 카드를, 반 마리를 살 때는 현금을 냈던 것이다.

난 주로 우리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쓰는데, 혼자 갔을 때 카드를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 11시 이전에 가면 아메리카노가 1,500원이고, 그 이후에 가도 2,500원인데, 매일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가면서 그 적은 금액에 카드를 내밀기가 염치없었다. 게다가 사장님은 얼마나 친절하신지. 내가 주로 앉아서 글을 쓰는 자리는 비워놓기까지 하시니 거기다 대고 어떻게 카드를 내겠나. 하지만 나도 가끔 친구나 가족과 함께 갈 때면 ‘그동안 내가 카드가 없어서 현금을 냈던 것은 아닙니다!’라고 생색내듯 당당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에 카푸치노 한 잔, 카드로 결제할게요.”

오전 글쓰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짜장면이 먹고 싶다. 이때도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식당에서 포장할 때도 포장용기 값 500원을 받는 가게가 늘어나고, 1만원 이상 주문해야 배달이 가능하거나, 배달료 2,000원을 따로 내야 하는 가게가 늘고 있을 때, 동네 중국집은 4,500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해 주는 고마운 식당이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면 사장님은 세상 활기찬 목소리로 “XX성 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지만, 곧이어 내가 “XX아파트 X동 X호 인데요, 짜장면 한 그릇만 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이내 활기찬 목소리는 사라지고 실망한 기운을 가까스로 감추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서는 “한 그릇은 현금 결제를 해주셔야 해요”라고 덧붙인다. 암,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다.

예전에는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가게를 보면 ‘탈세하려고 그러는구만!’이라며 곱지 않게 봤다. 하지만 사정 뻔히 보이는 가게에서, 그것도 소액을 결제할 때는 내가 알아서 현금을 낸다.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인하가 발표됐다. 나에게 따뜻한 커피와 작업실을 내어주고, 점심밥을 배달해주고, 시원한 캔맥주와 뜨끈하고 바삭한 반 마리 치킨을 먹을 수 있게 해 준, 나의 동네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준 우리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좋아하신다. 이제 좀 맘 편하게 카드 긁어도 되려나?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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