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중견국의 힘겨운 외교정책

입력
2018.12.12 18:00
30면

 호주, 수출은 중국 안보는 미국에 의존 

 중견국의 ‘양다리 정책’은 불가피한 숙명 

 미중 사이에 낀 한국, 호주전략 참고할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안보와 경제가 얽혀있다는 점에서 호주는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호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4위로 한국(11위)에 근접한 수준이다. 호주의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는 30%에 가깝지만, 안보는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한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안보와 경제의 무게를 늘 저울질해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 수 없는 ‘양다리 정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처지가 비슷하다.

물론 차이점도 많다. 대륙으로 분류되는 호주는 어느 나라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다. 미군이 상주하는 기지는 없고 미국 해군 1,600명이 건기에 훈련할 수 있는 순환기지(로테이션 베이스)만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항공모함도 보유했으나, 유지관리비가 많이 들어가고 강대국의 무력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1986년 중국에 팔아버렸다. 더욱이 호주 지도를 미국 지도에 겹치면 모양이 거의 일치할 정도로 땅이 넓다. 철광석과 LNG 등이 풍부하고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에 적극적이다.

이런 호주가 북한 핵 문제에 의외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뿐만 아니라 정부 관계자나 학자들 간에 북핵 접근법에 있어 진보와 보수 시각으로 양분이 돼 있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지난주 호주 정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시드니와 캔버라에서 개최한 한ㆍ호 안보포럼의 각종 세미나에 참가하면서 한반도와 지구 반대편에 있으면서, 북한과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나라가 왜 북한 핵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호주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밝힌 논리는 비교적 단순했다. 그들이 북한 핵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에서 출발한다. 호주는 한국전쟁에도 참전했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한국이 중국과 일본에 이은 호주의 3대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한반도에 분쟁이 발생하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북한 핵 프로그램에 호주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으로는 장거리미사일이 호주로 날아올 수 있다는 것도 위협이라고 했다.

일관성 있게 유엔 안보리의 북핵 제재를 열심히 이행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래서 호주 정부는 미국 일본 캐나다 등과 함께 아시아 해역에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제 결의가 금지한 북한 선박의 석유정제품 불법 환적을 단속하기 위해 공군 초계기 포세이돈(P)-8을 투입, 항공정찰을 하는 등 감시활동을 펴고 있다. 또 지난해 5월 전 세계 수십 만대의 컴퓨터를 마비시킨 ‘워너크라이(WannaCry)’ 랜섬웨어 공격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호주 정부의 사이버안보 기술이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도 우리처럼 강대국에 끼인 중견국(middle power)으로서 고민이 많았다. 호주는 미국의 입장에 동조해 5G 설비사업에서 중국 화웨이를 배제했다. 중국 정부의 사이버공격 등에 이 설비가 활용될 수 있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사드 배치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우리나라처럼 향후 벌어질 수 있는 중국의 경제적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특히 최근에는 미중 무역갈등으로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의 보호주의가 강화하고 중국의 역내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기존의 국제 규범과 질서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주 정부는 역내의 ‘규칙을 근거로 하는 질서(rules based order)’를 강조한다. 역내 교역의 자유를 확보하고, 모든 나라가 국제법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호주-동남아-인도를 일직선 상으로 연결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연대를 통해 강대국의 영향력을 견뎌내면서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중견국 외교정책의 어려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나 호주 정부 관계자의 마지막 멘트에서 해법을 엿보았다. “큰 도전이기 때문에 쉽거나 나은 길(easier or better path)은 없다.” 우리 정부도 참고할 만하다.

조재우 논설위원


※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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