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차이나 스쿨’의 부상

입력
2018.12.12 18:00
30면

외교부에는 ‘워싱턴 스쿨’과 ‘재팬 스쿨’이라는 양대 산맥이 있다. 외교관을 전문성에 따라 분류한 미국통과 일본통을 일컫는 말이다. 양대 산맥이라곤 하지만 한미관계 중심인 우리 외교의 특성상 비중과 영향력에서는 재팬 스쿨이 워싱턴 스쿨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1990년 이후 11명의 직업 외교관 출신 외교부 장관 가운데 순수하게 워싱턴 스쿨과 재팬 스쿨로 분류되는 이가 각각 7명과 1명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미국 편중 외교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핵 협상이 한반도 평화의 관건이 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북미국 중심인 워싱턴 스쿨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 재팬 스쿨은 한일 관계, 특히 국교정상화 교섭이 최대 외교 현안이던 1950~60년대에 외교부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외교부에서 출세하려면 미국이나 일본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말이 떠돌던 시절이다. 하지만 96년 일본통의 좌장이던 공로명 장관이 퇴임한 뒤로 재팬 스쿨의 위세는 시들해졌다. 그래도 일본과 중국 지역을 관할로 두고 있는 동북아국에서는 세력이 여전했다. 93년 한중 수교 이후에도 동북아국장은 대부분 일본통이었고 중국통은 신정승 전 주중대사,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 등 소수에 불과했다.

□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 협상 등 한일 외교 수요가 증가하면서 재팬 스쿨이 잠시 부상하는 듯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에 참여했던 재팬 스쿨은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 적폐’로 몰리는 지각 변동과 함께 사실상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외교부가 올 하반기 주일대사관에서 근무할 서기관급을 모집했지만 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정권이 바뀌면 책임 추궁을 당한다”는 인식 속에서 도쿄는 어느새 외교 험지(險地)로 변하고 말았다.

□ 외교부가 중국을 담당하는 국 단위 조직의 신설 계획을 밝혔다. 일본을 담당하는 동북아1과와 중국을 담당하는 2, 3과를 소속으로 둔 동북아국에서 중국 담당 2개 과를 중국국(局)으로 분리ㆍ승격, 대중 외교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한중 수교 이후 동북공정, 탈북자 문제 등 대중 외교 현안이 부상하면서 중국 전문가 그룹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됐다. 지난해 혹독한 대가를 치렀던 사드 논란은 중국국 신설의 촉매제가 됐다. 바야흐로 ‘차이나 스쿨’이 재팬 스쿨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외교부 핵심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